국내여행

비효율이 주는 특별함, 통영 당일치기 여행기

불타는 신디 2025. 5. 1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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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효율이 주는 특별함, 통영 당일치기 여행기

출처 : 구글 이미지

"섬과 바다 사이, 한 폭의 수채화를 걷다"

이따금 마음이 지칠 때면 나는 지도를 펴고 바다를 바라본다. 땅끝 근처, 이름만으로도 청량한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통영. 시인 유치환이 사랑했던 도시, 화가 전혁림이 평생을 그린 도시. 나는 그 이름 하나에 이끌려, 당일치기라는 짧고도 무모한 여행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첫차 고속버스를 타고, 통영에 도착한 건 오전 10시. 낯선 공기의 냄새, 이른 아침에도 활기를 머금은 항구, 그리고 흩어지는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출처 : 국제신문

동피랑 마을, 파란 벽과 노란 기억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동피랑 벽화 마을.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 벽마다 수놓아진 그림들이 나를 맞이했다. 오래된 집들의 담벼락이 화가의 손끝을 빌려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었다.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 어깨를 마주한 연인, 혼자 조용히 걷는 여행자—모두가 풍경 속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언덕 꼭대기에 다다르자 탁 트인 바다가 펼쳐졌다. 그 바다 앞에서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이 풍경을, 이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출처 : 지역N문화

중앙시장과 통영의 맛

언덕을 내려와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통영의 생동감이 가장 진하게 흐르는 곳이었다. 시장 초입에서 아저씨가 굴을 까고 있었고, 그 옆에선 해물파전 냄새가 허기를 자극했다. 나는 굴밥 정식을 파는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따끈한 밥 위에 올라간 신선한 굴, 함께 나온 젓갈과 된장찌개. 익숙하지 않은 맛이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깊이 따뜻함이 번져왔다. 음식은 늘 장소의 기억과 함께 남는다. 그 날의 밥맛은, 그 날의 바다를 닮아 있었다.

출처 : 아웃도어뉴스

서호시장 골목, 시간의 틈을 걷다

식사 후에는 통영의 오래된 골목 중 하나인 서호시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관광객보다는 지역 주민의 삶이 더 많이 스며든 공간이다. 나무 간판, 낡은 자전거, 그리고 조용히 빗장을 연 가게들. 한 노부부가 함께 앉아 고등어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 장면은 마치 오래된 사진 속 한 장면처럼 고요하고 정겨웠다.

서호시장 끝자락에서 작은 책방을 발견했다. 들어가 보니, 여행서와 시집, 그리고 지역 작가의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책방 주인과 몇 마디 나누고, '바다를 사랑하는 시인의 시집'을 한 권 샀다. 그 책은 여행 가방 속이 아니라, 마음속에 들어앉았다.

출처 : 지역N문화

미륵산에서 본 마지막 풍경

통영의 풍경을 높이에서 보고 싶어 미륵산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가 천천히 올라가며 도시의 전경이 펼쳐졌다. 붉은 지붕들, 바다에 떠 있는 조그마한 배들, 그리고 저 멀리 펼쳐진 섬들. 정상에 오르자 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기분은 이상하게도 편안했다.

바위 위에 앉아 바라본 바다는 차분했다. 누군가는 통영을 ‘한국의 나폴리’라 부르지만, 나에겐 그저 마음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미륵산에서 내려와 다시 항구로 돌아가는 길, 하늘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돌아가는 버스 안, 통영의 바람을 품고

서울행 버스는 저녁 7시.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휴대폰엔 오늘 찍은 사진들이 하나둘 저장되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선명한 장면은 사진이 아니라 마음에 남아 있었다. 동피랑의 파란 벽화, 굴밥의 짭조름함, 골목의 정적, 산 위에서의 바람.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 용기"

통영에서의 하루는 아주 천천히 흘렀다. 늘 효율을 따지는 도시인의 습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여행이었지만, 그 안에 오히려 삶의 본질이 숨어 있었다. 비효율은 때로 사치가 아니라, 진짜 나에게 주는 배려다.

다음에도 시간이 지치고 마음이 삐걱거린다면, 나는 또 이런 여행을 떠날 것이다. 통영처럼 조용한 도시로, 나의 속도를 찾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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