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기억을 거닐다, 남이섬에서의 하루

불타는 신디 2025. 5. 15. 16:54
728x90
반응형

기억을 거닐다, 남이섬에서의 하루

"나무와 바람이 인사하는 아침"

춘천행 ITX 청춘열차를 타던 그날 아침, 나는 핸드폰도 음악도 잠시 꺼두었다. 봄 햇살이 부드럽게 창밖으로 스며들었고, 기차는 바퀴가 아닌 바람에 실려가는 듯 천천히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서울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단 하루, 고요하고 따뜻한 여행을 꿈꾸며.

남이섬은 늘 누군가의 추억 속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드라마 속 풍경처럼 낙엽이 휘날리거나, 첫눈이 소복이 쌓인 그 길을 걷는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나에게 남이섬은, 새로운 계절을 시작하는 조용한 의식 같은 곳이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섬으로 향하는 작은 설렘"

가평 선착장에 도착해 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조차 설레었다. 강 위를 가르며 달리는 페리 안에서 찬바람이 살짝 볼을 스쳤다. 그 순간, 이곳이 단지 관광지가 아닌 한 편의 이야기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섬에 발을 딛자마자 코끝에 퍼지는 흙냄새, 그리고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남이섬은 걷는 속도마저 다르게 만든다.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누구도 떠밀지 않는다. 그저 나무들이 천천히 인사하듯 길을 내주고, 바람이 손을 잡아 끌 뿐.

출처 ; 서울자치신문

"길 위의 기억들"

메타세쿼이아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나는 자주 멈춰섰다. 길게 늘어진 나무 그림자 사이로 햇살이 춤추는 그 풍경은, 마치 시간도 함께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나무마다 가지는 사연이 있다면, 이들은 아마 수많은 이들의 사랑과 이별을 품고 있을 것이다.

한켠엔 벤치 위에서 도시락을 나누는 연인들, 나무 그늘 아래 책을 읽는 여행자, 자전거를 타고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들까지. 누구나 자신만의 장면을 만들어가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나도 잠시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과 따뜻한 햇살을 나눴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섬 속의 작은 미술관과 음악"

걷다 보니 작은 갤러리가 나타났다. 내부에는 지역 작가들의 그림과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나무로 만든 조각상들이 햇살을 머금고 빛났다. 미술관을 나와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북카페에 들러 따뜻한 유자차를 시켰다. 유리창 밖으로는 자작나무 숲이 부드럽게 일렁였다.

책 한 권을 펼쳐놓고 몇 장 넘기다 말고, 그냥 창밖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시간, 모든 감정이 천천히 가라앉는 듯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노을이 스며드는 강가에서"

해질 무렵, 섬의 분위기는 또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오렌지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강물이 조용히 흐르고, 나무들도 하루의 끝을 준비하듯 고요해졌다. 나는 강가에 서서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바람은 하루를 품은 채, 내 어깨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섬을 나서는 마지막 배에서 바라본 남이섬은, 아침의 설렘과는 또 다른 감정을 남겼다. 한 장의 엽서처럼 마음속에 곱게 접힌 하루.

"우리도 가끔은 섬이 되어야 한다"

남이섬은 누군가의 사랑이 시작되고, 또 누군가의 마음이 치유되는 공간이다. 분주한 일상 속, 나도 가끔은 스스로에게 이런 시간을 선물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휴대폰을 내려두고, 음악 없이 걷고, 생각 없이 바라보는 시간.

남이섬은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섬이었다. 다음에 또 다른 계절로, 다른 감정으로 찾아가고 싶은 그런 곳. 춘천의 공기 속에 남겨진 이 하루가 오래도록 나를 지켜줄 것만 같았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