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향 따라 걷는 하루 — 강릉 감성 당일 여행기
"햇살 좋은 어느 날, 동해를 보고 싶어졌어요"
바쁜 일상에 치이다 보면, 나를 위한 하루가 절실해지는 때가 있다. 그런 날이었어요. 눈을 뜨자마자 창밖을 보니 햇살이 말갛게 비치고, 바람은 아직 차가웠지만 봄기운이 완연했죠. 마음이 먼저 강릉을 떠올렸습니다. 바다, 커피, 그리고 그 모든 풍경이 감성을 자극하는 도시. 충동처럼 떠난 강릉행 당일 여행이 그렇게 시작됐어요.
서울역에서 첫 KTX를 타고 두 시간 남짓 달리면 도착하는 강릉. 창밖 풍경이 도시에서 숲으로, 다시 동해로 변해가는 걸 보며, 나는 벌써 여행자의 얼굴이 되었죠.
"안목해변 — 커피와 파도, 그리고 따뜻한 시작"
강릉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를 타고 향한 곳은 안목해변. 강릉의 시작은 역시 커피거리죠. 바다를 마주한 채 늘어선 카페들 사이로 걷다 보면, 마음이 절로 느긋해집니다. 고른 건 작은 로스터리 카페. 나무 인테리어와 잔잔한 재즈 음악이 감성을 자극했어요.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손에 쥐고 바다를 바라봤죠.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 흩날리는 햇살, 그리고 커피 향.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걱정도 필요 없었습니다. 그렇게 감각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걸 느꼈죠.
카페를 나서 백사장을 걸었습니다. 맨발로 바다 가까이까지 다가가 봤어요. 물결이 발끝을 스치자 차가움과 설렘이 함께 밀려왔죠.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바다를 즐기고 있었어요. 그 평화로운 장면 속에서 나도 조용히 녹아들었습니다.
"경포호 — 산책하며 만나는 정적인 풍경"
바다를 뒤로하고 이번엔 경포호로 향했습니다. 활기찬 바다와는 또 다른 고요함이 있는 곳이죠. 걷기 좋은 나무 데크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호숫가를 스치는 바람이 어깨 위로 얹히고, 물 위로 비치는 하늘과 나무가 그림처럼 아름다웠어요.
호숫가 벤치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어요. 익숙한 일상의 소음이 들리지 않으니, 오히려 내 안에서 많은 생각들이 속삭이듯 올라왔죠. 이곳은 떠들지 않아도 대화가 되는 장소였어요. 사색과 회복, 그 두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죠.
"초당 순두부 골목 — 부드러운 위로의 식사"
점심은 초당 순두부 거리에서 했어요.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작은 찬들과 함께 나오는 뽀얀 순두부. 한 숟갈 떠먹는 순간, 어릴 적 엄마가 끓여준 순두부찌개가 생각났어요. 그 기억 때문일까요, 식사는 단순한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위로의 과정처럼 느껴졌어요.
옆 테이블에 앉은 관광객들과 나누는 짧은 대화도 정겹고, 식당 아주머니의 투박한 친절도 마음에 스며들었어요. 강릉의 순두부는 맛도 좋았지만, 사람 냄새가 더 따뜻했죠.
"오죽헌 — 옛 것에서 찾는 시간의 깊이"
식사 후에는 오죽헌으로 향했어요.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 한국 5천 원권과 1천 원권 지폐의 주인공이 머물렀던 그 공간. 고택과 정원이 조용하게 그 시절을 간직하고 있었어요.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한옥 처마 밑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한 폭의 수묵화 같았죠. 시간의 결이 켜켜이 쌓인 이 공간에서, 나는 나의 오늘도 천천히 눌러 적듯 담고 싶었어요.
"강문해변에서 마무리하는 감성 하루"
여행의 마지막은 다시 바다로. 경포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강문해변은 비교적 한적하고, 그래서 더 마음이 갔어요. 해질 무렵, 바닷가에 앉아 붉게 물드는 하늘을 바라봤어요. 파도가 조금 더 느리게 들리는 듯했고, 바람도 더 부드러웠죠.
노을은 마치 오늘 하루를 천천히 접는 누군가의 손길 같았어요. 나는 그저 고개를 들고, 그 모든 색을 눈으로, 마음으로 담았죠. 그렇게 감성적인 하루는 저물고 있었어요.
"떠남은 곧 돌아옴을 위한 준비"
강릉은 늘 적당한 거리에서 나를 위로해 주는 도시예요. 너무 북적이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당일이지만 마음속에 깊이 남는 하루.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창밖 어둠에 비친 내 얼굴은 아침보다 편안해 보였어요. 강릉의 바다와 커피, 그리고 사람들 덕분에 조금은 더 나를 이해하게 된 하루였죠.
강릉은 그랬어요. 나를 새롭게 만들어주는 도시. 그렇게 다음에 또 오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