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소개
알렌 크라이더는 미국에서 태어나 고셴 대학교(Goshen College)와 프린스턴 대학교, 하이델베르그 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역사학자이면서 동시에 교회사가로서, 초대교회의 예배와 전도 등 초기 기독교 세계의 다양한 삶과 평화주의 전통을 연구했으며, 그의 연구는 오늘날의 교회회복과 부흥을 갈망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새로운 통찰과 도전을 준다.
저서로는 [초대교회의 예배와 전도], [평화교회는 가능한가], [거룩함으로의 여정](이하 KAP) 등이 국내에 번역·소개되었고, 최근의 저서는 Social Holiness: A Way of Living for God's Nation(2008), Resident But Alien: How the Early Church Grew(2009), Worship and Mission After Christendom (with Eleanor Kreider)(2011년) 등이 있다.
목차
추천의 글 _ 박총 7
옮긴이 글 15
서론 19
1장 저스틴과 키프리안의 회심 29
2장 초기 기독교의 매력 45
3장 회심의 여행 63
4장 콘스탄틴은 유혹을 확대했다. 82
5장 대중을 상대로 한 신앙입문교육 : 시릴과 크리소스톰 98
6장 반대하는 자를 유혹하기 : 어거스틴과 볼루시안 116
7장 크리스천을 변화시킨다 : 아를스의 캐사리우스 143
8장 회심의 산물인 크리스텐덤과 기독교의 미래에 대한 몇 가지 단서들 167
참고문헌 201
교부 및 중세 문헌 목록 208
요약
1장 저스틴과 키프리안의 회심
신약에서의 회심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신념, 소속, 행동에 엄청난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회심은 곧 전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 전통은 초대교회로 계속해서 이어졌다.
초대교회에서 회심을 가르친 대표적인 인물은 저스틴과 키프리안이다.
저스틴은 로마에서 지금의 전도사의 일을 하면서 침례 예비자들에게 신앙문답 교육을 하였다.
그는 네 가지 요소에서 저항할 것을 선언하였다. 돈, 권력, 섹스 그리고 주술이었다. 그는 이 영역에 관해서 섹스는 절제로, 주술은 오직 하나님에게의 헌신으로, 돈은 가난한 이웃과 나눔으로, 그리고 권력은 다른 원수들을 위해 기도함으로 대체하도록 가르쳤다. 이 가르침으로 인해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념의 변화를 가졌고 이는 곧 행동으로 나타났고, 이 행동은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키프리안 역시 초대교회에서 회심을 가르친 인물 중 한명이다.
그는 북 아프리카 교회의 감독이었는데, 침례를 삶의 전환점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침례를 통해서 죄 씻음과 능력을 부여 받고 중독에서 해방되는 자유인이 된다고 설명을 하였다.
2 장 초기 기독교의 매력
312년 로마 제국의 10%의 인구가 교회에 소속되어 있고, 이전 3세기 동안 교회는 통계상으로 매 10년마다 평균40%씩 증가했다. 권력자들의 멸시와 박해에도 초기 기독교 운동은 성장을 하였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기독교가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행동이었으며, 동시에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었다. 그들은 밤에 모였으며, 종교적 식사 자리에 사회적으로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하층민을 참석케 했다. 예배 모임은 배타적이었지만, 남성과 여성, 문맹자과 학식이 있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그들의 결속력은 실로 놀라웠다.
이렇게 모인 그들은 아주 특별한 자신들만의 공동양식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복지에 열성적이었고 가난한 자들의 집을 방문하였으며, 감옥에 찾아 갔다. 교회의 성장의 열쇠는 이러한 삶이었다.
그들이 위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던 이유는 그들의 신념과 가르침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나라에 살지만 오직 거류민으로 살았다. 그들은 다른 시민들처럼 모든 것에 관여할 권리가 있지만, 외국인처럼 모든 것을 감내 한다. 그들에게 모든 외국 땅이 그들의 조국이고, 자기들의 조국은 모두 외국 땅이었던 셈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세속적인 이익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3 장 회심의 여정
회심은 교회 공동체 들어와서 소속과 행동 신념이 변화되는 것을 포함했다. 이 일은 순식간에 일어날 수 없었다. 회심은 신앙의 예비자들이 자신을 ‘재사회화’의 과정에 복종시킬 때 일어났기 때문이다.
회심은 공동체마다 다르게 일어나서 한 가지 틀에서 정의를 내릴 수 없지만 히폴리투스의 저작으로 여겨지는 ‘사도전승’과 북아프리카의 신앙 문답집을 통해 우리는 큰 범주 안에서 초대교회의 회심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①사도전승
사도전승에는 보통 회심을 4단계로 구분을 한다.
제 1단계에서는 교제를 통해 기독교 공동체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사람을 기독교 교사들에게 연결 시켜주는 일이다. 이 단계에서는 교사는 신자를 정밀심사를 한다. 교사들은 오늘날과 같이 예비자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사들은 예비자나 후견인 모두에게 사회적 지위, 직업, 행동, 등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면서 이 사람이 과연 말씀을 들을 능력이 있는지를 결정하였다.
2단계에서는 후견인들과 함께 신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쳤다. 대게 3년이 걸리는 이 신앙 문답 과정은 실질적인 문제와 기독교의 축적된 전통을 다루었다.
이후, 침례 전 마지막 전 주 까지 신앙문답에 철저히 참여하고 그들의 삶을 행동에 옮겨졌다고 생각하면 3단계로 진입 할 수 있었다.
3단계는 바로 부활절 철야기도의 정화의식과 침례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과정을 다 거쳤다고 해서 새로운 신자의 교회 등록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4단계가 남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교에 의해 그들이 이제 경험하게 될 성례전에 몇 가지 가르침을 더 받았다.
② 키프리안 학파의 종교적 가르침
북아프리카 키프리안은 신앙 입문자를 위해 3권의 책을 서술하였는데 첫 번째 책은 구약(유대교)과 신약의 관계에 대해서, 두 번째 책은 그리스도론을, 세 번째 책은 (가장 두껍고 양이 많다) 실질적인 종교적 가르침에 대해 서술 해 놓은 책이다.
4장 콘스탄티누스, 유혹을 확대하다.
312년 밀라노 칙령이 내려진다. 그리고 황제는 임종 직전 침례를 받았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회심의 원리에 대한 변화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독교 회심의 변화는 개인의 믿음, 소속, 해동의 변화를 포함하며, 그 과정에서 강력한 종교적 경험이 수반 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는 이와 조금 달랐다. 그의 종교교육은 체계적이지 않았고 자기주도적 이었다. 또한 그는 교회 예배와 주의 만찬에 참여하지 않았고 궁전에서 ‘하나님과 고독한 대화’를 즐겼다.
그런 그가 침례를 받았다. 이는 곧, 신앙문답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기독교 역시 이전과 다른 위상을 지녔다.
그들은 더 이상 박해의 대상이 아니었다. 4세기가 되면서 황제의 후계자들은 기독교 회심을 위한 강력한 유인책을 제시했다. 기독교인들에게 힘든 공적 의무를 면제해주고, 교회지도자들에게 해택과 부를 주었으며, 공무원들에게는 승진에 대한 보장을 주었다. 340년 경 부터는 이교도를 미신이라고 지칭하며 박해를 하였으며, 380년 경에는 이교도 모임을 법적으로 금지시켰다. 416년에는 기독교인만 공무원이 될 수 있었으며 529년에는 유아세례를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회심을 강제화하는 칙령을 내렸다.
이러한 변화들은 신앙 문답 과정을 최소화 시켜버렸다. 대게 3년 이상 걸리던 신앙 문답과정은 40일,, 30일. 등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4세기에 이르러서는 설교 외에는 문답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고 그나마 이 설교 역시 자신들이 참여하고 싶으면 참여하고 참여하기 싫으면 듣지 않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5장 대중적인 신앙 문답교육 : 키릴과 크리소스톰
4세기의 대표적인 신앙문답 교육을 한 사람은 키릴이다. 그의 신앙 문답 과정은 이전 보다 더 간소해졌다.
그는 기독교 전통적인 이야기들을 소개해줌으로써 예비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소속감을 구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사도신경의 구절 하나하나를 설명했다. 부활절 주간인 8주차에는 예비신자들이 후견인과 함께 한 사람씩, 시릴에게 가서 신앙 고백문을 암송하였고 그 다음에 바로 침례를 받았다.
그는 이전 교사들과 달리 예비 신자들을 환영하였고 오직 이단과 대처 할 수 있는 신앙문답만을 가르쳤다. 그렇기에 2~3세기에 군복무 문제나 원수 사랑에 대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회심을 옳은 것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이방종교가 성행했던 안디옥의 감독 크리소스톰 역시 그 이전에 신앙문답과 조금 다른 신앙문답을 가르쳤다. 우선, 그는 아리우스 주의, 사벨리우스 주의에 대한 경계로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 부분과 선교 부분에 있어서 강화를 하였다.
또한, 그 이전에 강조되던 공동체 생활보다는 개인의 생활을 강조한 것이 하나의 특징이었다.
6장 반항아 끌어들이기: 어거스틴과 볼루시안
5세기 신앙 문답의 대표자는 어거스틴이었다. 그는 도타누스와 다른 이단들과 교리 논쟁을 종종 벌였고 그들의 영향으로 인해 5세기 교리 문답 역시 그 성격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다시 초대교회 때와 같이 이교도가 보기에도 매력적인 삶을 살라고 권면하였다.
하지만, 어거스틴의 신앙문답과정은 고전적인 4단계 과정 약간 차이를 가졌다.
첫 번째 단계에서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등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야기 형식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 한 뒤 신자가 이 이야기에 동조를 하면 소금의 예식을 거행하고 바로 2단계로 넘어갔다. 2단계에서는 주일마다 행해지는 독서와 설교를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 후, 3단계에서는 영적인 싸움을 중시했는데 그들은 침례 받기 전 매일 저녁 축사 의식을 행했다. 그 후 4단계의 침례를 주고 행동 변화를 촉구하였다
이는 고전적인 4단계와 상반되는 내용이다. 고전적인 4단계에서는 행동의 변화를 촉구 한 뒤, 침례를 주었지만 어거스틴은 이 두 단계를 역전 시켜버린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회심은 삶의 변화가 아닌 영적인 전투였기 때문이다. 그의 관심은 행동의 변화 보다는 마귀축츨에 있었고 이 문제만 해결 되면 삶은 저절로 변하게 된다고 생각하였기 떄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회심의 4단계 중 3단계를 가장 강조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거스틴은 이단과의 싸움을 벌였고 그 과정 안에서 그는 권력자들을 포섬하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블루시안이다.
블루시안은 로마의 걸출한 가문의 사람이었다. 그는 기독교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던 중 어거스틴과 만나게 되고 어거스틴은 그의 오해를 화려한 언변으로 풀어주었다. 특히 군문제와 원수 문제 등 현실적 정치와 동떨어진 부분에 있어서 어거스틴은 내면의 변화를 강조하며 기독교가 정치적으로 해를 입히지 않는 종교라고 설명하였고, 시간이 흘러 블루시안은 침상에서 침례를 받았다.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콘스탄티누스가 침례받을 때 교회는 황제에게 삶의 방식의 변화를 요구 했다. 그러나 블루사인의 모습을 보면 그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언급은 없었으며 그 누구도 이와 같은 특권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 사회에 그것이 관례였기 때문이었다.
7장 그리스도인을 개종시키다 : 아를의 캐사리우스
어거스틴 이후 1세기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남부 갈리아에는 케사리우스라는 주교가 있었다. 그는 어거스틴의 전통 위에 서서 지역 엘리트들의 영향력과 힘을 동원하여 상명하달에 의존해 기독교를 성장 시키려고 노력 했다.
케사리우스는 그 동안 있던 4단계를, 형식만 존재하는 2단계로 만들어 버리고 부활절 수일 내에라도 침례신청을 하면 짧은 시간 안에 침례를 받을 수 있는 형식으로 수정을 하였다.
그는 신념이나 공동체 소속보다는 행동에 대해서 더 많이 거론했다.
그러나 청중들은 초대 교회와 같이 삶의 양식을 높이는데 무리라고 하며 그의 설교를 거부했다. 그러자 두 가지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하나는, 케사리우스의 설교를 따르려는 사람들이 그를 중심으로 벌인 수도원 운동이었다. 시대가 변하기는 했어도 몇몇의 사람들은 회심을 경험하고 싶어 했고 그들은 수도원으로 몰리기 시작하였던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와 반대로 그의 설교를 거부했던 이들에게서 신학의 토착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교도들이 기독교로 개종을 하면서 자신들의 문화의 처우에 대해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모든 문화를 버렸지만 많은 이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그리스도를 혼합하여 자신들만의 기독교 문화를 만들어 내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다시한번 초대교회의 회심이라는 측면이 모든 사람이 아닌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에 맞게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시작 한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5세기 무렵 클로비스 왕의 회심으로 인해 시작된 집단 개종은 그 전에 있던 회심과 달리 페스트 푸드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권력자들의 집단 개종은 서구 유럽을 잠식하였다. 이제 초대 교회의 4단계 회심은 존재하지 않았다. 교회는 이 시기부터 4단계였던 회심의 단계가 2단계로 줄었다. 1단계는 부모와 가족에 의해 유아세례를 받는 것이고 2단계는 교회 교인으로서 도덕을 지키며 견진성사를 받는 것이 전부였다.
8장 회심의 산물인 크리스텐텀과 기독교의 미래에 대한 몇 가지 단서들
크리스텐덤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집단 개종에 의해 형성된 기독교 문명을 말한다.
이런 크리스텐덤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1. 정통 기독교만을 옹호한다.
① 이단은 무조건 적대시 한다.
② 이방종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토착화를 실시 해야 한다.
③ 종교적 교훈은 종종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 한다.
④ 사회적 제의, 예술은 기독교 적이어야 한다.
2. 기독교 공동체에 들어와야 한다.
① 유아세레를 받아야 한다. - 받지 않는 것은 불법
② 모든 사람은 교인이어야 한다
③ 교회와 국가는 공생해야 한다.
④ 교회의 치리에 복종해야 한다.
⑤ 성직자만이 성서를 해석 할 수 있다.
3. 기독교 공동의 행동
①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가르침이 아닌 )사회적 상식 수준에 행동을 해야 한다.
② 기독교 도덕법을 강조한다.
③ 십일조를 비롯한 여러 세금 징수를 잘 해야 한다.
④ 학교, 감옥 등 모든 곳에 있는 예배를 소흘히 해서는 안 된다.,
서평
- 나는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대부분의 생각에 동의한다. 먼저 이 저자는 역사학자로서 기본적으로 초대 기독교와 로마 제국 시대의 기독교를 대조하면서 비교하고 있다. 이 저자의 아주 기본적인 생각은 신념과 소속과 행동, 이 세 가지가 초대 기독교가 가진 특징이라고 말한다. 이 세 가지를 점검하는 방식으로 초대 기독교는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물론 초대 기독교가 박해가운데서 자신들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도 그런 모습을 가졌겠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신념과 소속과 행동이라는 세 카테고리가 중요한 것으로 보는 견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는가? 오늘날에는 신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신념이 행동을 낳을 것이라는 관념 속에서 그렇게 규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신앙고백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신앙고백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신앙고백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걸맞는 행동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히브리서10장-11장에 걸쳐 믿음에 대해 설명할 때,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지키던 신앙의 선조들을 열거하는 모습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은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공식이 만연하여 더 이상 믿음을 지키는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예전에 읽었던 “진실로 회심했는가”라는 책을 보면서 회심은 입으로 믿음을 시인하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삶의 전환과 결과를 보여야 함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요 근래 읽었던 존 맥아더
목사의 “참된 무릎꿇음”이라는 책의 논조도 그러하다.
입으로 고백된 신앙도 중요하지만, 그 믿음의 고백이 진짜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행동이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야고보서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특별히 신약을 보면), 개인적인 것보다는 공동체에 대한 권면이 더 많다. 책망과 칭찬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향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 저자가 말하는 신념, 소속, 행동, 이 세 가지가 반드시 검증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오늘날 신념(믿음) 만 강조되다 보니, 개인적 신앙으로 전락하여, 소속, 행동을 벗어난 그리스도인들만을 양성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는 더 이상 교회에 나와 공동체를 이룰 생각이 없이 그저 영상매체로 예배를 드리며,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사람들과 신앙과 삶은 분리된 이원론적인 모습에서 입으로 시인하였으니 구원을 받았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 사람들이 양성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우리의 회심의 문제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특별히 성경 해석의 균형을 가지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