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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생각해볼만한 것

불타는 신디 2014. 7. 13.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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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생각해볼만한 것



기원전 5세기부터 희랍 곳곳의 지식인들이 수도 아테네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처했다. “현명한 사람”으로 자처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장담했다.

 “나는 재산을 모으는 지혜를 너희에게 가르쳐 주겠다. 나는 권력을 얻는 지혜를 너희에게 가르쳐 주겠다. 나는 명예를 획득하는 슬기를 너희에게 전수해 주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지혜를 너희에게 가르쳐 주겠다.” 이렇게 그들은 사람들에게 큰소리쳤다.

 그리하여 당시 아테네의 젊은이들은 그들 곁으로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이들 속에는 젊은 플라톤도 끼어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외치던 이들을 사상사 속에서 소피스트라고 부른다.

 당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소피스트들을 논박하기 위하여 거리에 나섰다. 그리하여 광장과 경기장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소피스트들은 재산을 모으고, 권리를 획득하며, 명예를 얻는 지혜(기술)를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겠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특히 사람들을 설득하는 지혜(기술)를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겠다고 장담하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그것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다. 특히 “사람들을 설득하는 지혜(기술)”에 대해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설득하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어떤 것이, 그것이 “옳은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추구하도록 설득하겠다는 말인가? 또는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옳은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추구하도록 설득하겠다는 말인가?

 그리고 어떤 것이, “참된 것”이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추구하도록 설득하겠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참된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거짓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추구하도록 설득하겠다는 말인가?

 이러한 의문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답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 쪽이었다. 즉, 어떤 것이 그 자체로 “옳은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추구하도록 설득하겠다는 것이 소피스트들의 의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이 “옳은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추구하도록 설득하겠다는 것이 소피스트들의 의도였다.

 그리고 어떤 것이 그 자체로 “참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추구하도록 설득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의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이 “참된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거짓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추구하도록 설득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의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을 설득함으로써 소피스트들은 자기 자신의 이득을 챙기고 있었다. 즉, 재산을 모으고, 권리를 획득하며 그리고 명예를 얻어내고 있었다.

 소크라테스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거리로 나섰던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워진다는 것은, “덕스러운 것”을 추구하는데 놓여 있다고 소크라테스는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사람다워진다는 것은 “옳은 것”, “선한 것”, 참된 것“ 등을 추구하는 데 놓여 있다고 소크라테스는 굳게 믿고 있었다.

 이제 소크라테스에게 “생각해 볼만한 것”은, “덕스러운 것,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이제 그에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구체적으로 “옳은 것, 그것은 무엇인가?”, “선한 것, 그것은 무엇인가?”, “참된 것, 그것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이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줄곧 생각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옳은 것,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선한 것,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 참된 것,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러나 이제 문제가 생긴다. 그것도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다.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던져 놓고서도, 그에 대한 해답을 얻어낼 수 없었다. 다시 말해서, 실천적으로는 확실하고 명백한 것에 대해서 이론적으로는 그 근거를제시할 수 없었다.

 인간은 “옳은 것”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선한 것”, “참된 것”을 추구한다. 소크라테스에게 이것은 실천적으로 자명한 사실이었다.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옳은 것,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선한 것,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참된 것,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론적으로 답을 줄 수가 없었다. “옳은 것”, 그것은 도대체 왜 그것이 옳은 것이 되며, “옳지 않은 것”, 그것은 왜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이되는가? “참된 것”, 그것은 도대체 왜 그것이 참된 것이 되며, “거짓된 것”, 그것은 도대체 왜 그것이 거짓된 것이 되는가?

 우리가 그렇게 판단하고 또한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 토대는 그리고 그 척도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소크라테스는 얻어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스스로 자기가 지혜롭다고 내세우고 있는 사람들을 그리고 스스로 자기 자신이 현명하다고 내세우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물었다. “옳은 것,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선한 것,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참된 것,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하고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가 그때마다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은 다음과 같은 것뿐이었다. 즉, 그들은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스스로 자기 자신이 지혧다고 내세으고 있는 그들은,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현명하고 지혜롭다고 자시를 내세우고 있는 그 사람들은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의 분노와 노여움을 샀다. 그가 소피스트들의 무식을 폭로한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결국 고소당한다. 죄명은, 아테네인들이 섬겨온 전통적인 신을 부인한다는 것과 새로운 학설로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를 존경하고 아끼던 친구들과 제자들은 소크라테스가 탈옥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그는 탈옥하는 것을 거절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소크라테스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친구들과 제자들 앞에서 평온한 마음으로 독배를 마셨다.

 소크라테스는 묻는 사람이었다. 줄곧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도대체”라는 말마디를 붙여서 질문하기 시작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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