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한국 교회사 연구 방법론
1. 한국 교회사의 주요 저서와 논문
2. 한국 교회와 교회의 전통
3. 한국 교회사에 과제
한국 기독교사와 경교
1. 동서의 교류와 기독교의 전래
2. 경교의 중국 전래
3. 한반도에 경교가 전래되었는가
4. 경교의 신앙 개조
5. 정토교는 경교의 영향을 받은 것인가
로마 가톨릭교의 선교와 한국 천주교
1. 로마 가톨릭교의 전래
2. 한국 천주교회의 설립
3. 전추교의 수난
개신교의 한반도 선교 시작
1. 최초의 선교 시도
2. 선교 이전의 성경 번역
3. 열강의 식민지 확장과 세계 선교
4. 선교사들의 입국
5. 한국에서의 기독교 선교와 수용
6. 선교사들의 문화 사업
7. 초대 선교사들의 전도 활동과 교회 설립
8. 선교 정책
한국 개신교 교회 설립
1. 정치적 환경과 개신교
2. 초기 한국교회의 부흥 운동
3. 자립하는 한국 교회
4. 초기 한국 교회의 선교
5. 초기 한국 교회의 신학
한국 개신교의 성장
1. 일본 강점기하의 한국교회
2. 3.1 독립 운동과 한국교회
3. 한국교회의 성장(1910-1930)
1930년대 한국 교회의 시련
1. 새 신학의 유입
2.신사참배와 한국 교회의 시련
1945년 광복을 맞이한 한국 교회
1. 해방 후 정치에 대한 교회의 대응과 교회 재건
2. 한국교회의 분열
3. 6.25 전쟁과 한국교회
1960년대 이후의 한국교회
1.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한국교회
2. 한국 장로교의 분파와 신학적 입장
3. 토착화신학과 한국 기독교의 토착화
4. 세속화신학
5. 복음주의 운동와 복음주의 신학
6. 분열된 한국 교회의 연합 운동
7. 이단들의 준동
8. 한국 교회의 세계 선교
한국 교회의 현실과 전망
1. 한국 교회의 현실과 전망
부록
통계도표
참고문헌
색인
서평
나는 역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역사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두 가지를 잘 못하기 때문이다. 먼저는 연도를 외우지 못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사람이름을 외우질 못한다. 그런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인데, 이 두 가지에 취약하기 때문에 역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역사는 현재를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고 역사를 통해 미래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긴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곧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니깐…성경에서 나오는 이러한 안목과 통찰력을 예언자적 혜안이라고 신학적으로 규명한다고 수업시간에 들은 기억이 난다.
사실 역사를 싫어하는 내가 “한국교회사”가 필수인줄 모르고 다른 과목을 들을려고 수강신청을 했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문제가 되는 이단에 대한 수업이었다. 그러나 ‘한국교회사’가 필수인 사실에 나의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수업시간마다 극도로 집중해야 하는 나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교재를 읽고,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느낀 점들은 여러가지였다. 한국교회사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1907년 평양대부흥 사건 정도 밖에 없었는데, 수업이 진행되면서 교재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그 사실이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빚을 진 것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사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올 수 있었고, 그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복음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박해와 어려움, 죽음까지도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도 복음을 지킨 믿음의 선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러한 고귀한 희생이 이 한반도 땅에 있었다는 것!! 그것이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믿음을 지킨 사람들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 복음을 지키기 위해 신앙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는가? 나부터 이 질문에는 대답하기 어렵다. 아니 그러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무너져 가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마도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복음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불사하는 열정과 믿음과 희생이 있다면 오늘날 한국교회에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 같은 부흥의 역사가 도래할 것을 나는 믿는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기도하며, 복음으로 무장하며, 말씀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출애굽기, 민수기, 여호수아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앞서서 하나님의 법궤가 먼저 가시고,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고 약속하신 말씀들이 있다. 우리 한국교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국교회사를 보면서 아이러니 했던 것은 선교사들이 이땅에 들어와서 포교할동, 선교활동을 하기 이전에 성경이 먼저 이 땅에 들어와 그 성경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놀라운 이야기였다. 오히려 선교사들이 이 땅에 들어왔을 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어느 정도 보급된 상황들을 보면서 놀랐다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가 작정하시면 스스로 일하신다라는 것의 증거가 아닐까? 제대로 된 번역작업도 이뤄지지 않아 의미가 불분명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말씀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지금도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도 사실 이것 저것 프로그램들이 넘쳐나고 있다. 물론 그런 프로그램들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역사적 교훈이 아닐까? 성경에 나온 말씀들처럼 하나님이 먼저 움직이시고, 준비하시고, 역사하시고 그 이후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세상적 기법과 인간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처럼 오히려 더욱 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히브리서 4장 12-13절 말씀처럼 말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이 땅의 선교사들이 들어와 많은 사역들을 감당하였던 것을 보게 된다. 의료, 교육등 우리나라의 계몽을 주도했던 것이 바로 선교사들이었으니깐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취약한 부분들의 필요가 공급해 주면서 이 땅의 영혼들을 위해 수고한 선교사들의 노고가 오늘날 많은 부분의 흔적들로 남아 있음에 감사를 표한다. 개화시기를 이끌었던 것도 영혼을 사랑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끌어지며, 일제탄압때도 또다른 위로와 희망이었으리라 믿는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앞서 복음이 이땅에 들어오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심을 역사적 관점에서 보게 된다.
하나님은 이 땅을 사랑하시며, 이 땅에 대한 계획이 있으셨기에 한국교회사 곳곳에 하나님의 섭리를 조금이나마 보게 된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가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충분히 경험되어졌다고 믿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픈 것은 이 땅에서 있었던 신사참배의 문제가 마음이 아프다. 물론 많은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신사참배로 인해 많은 박해를 받았다는 것은 참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오늘날 신사참배의 문제에 대해 많은 평가들을 내리겠지만, 한 가지 내가 간과하고 싶지 않은 것은 오늘 우리는 비판하지만, 우리가 그 상황에 직면하였을 때, 과연 우리는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목숨을 내놓고 신앙을 지키겠는가 하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사실 오늘날 신사참배 같은 문제들은 없지만, 오히려 신앙의 자유가 있지만, 하나님에 대해 더 배교하는 우리의 삶의 모습은 없는가 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사건에 대해 우리는 베드로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며 그렇게 하지 말자고 이야기 하지만, 오늘날 오히려 베드로보다 더 나은 상황에서 조차 하나님을 부인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우리의 신앙의 배교문제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아니 그리스도인이면서 그리스도인이 아닌 듯 생활하는 것이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적어도 신사참배의 문제나 베드로의 상황은 급박하고, 위험한 자신들의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신앙을 져버린 것이라는 동정표라도 얻을 수 있겠지만은 오늘날 우리의 그런 신앙의 자세는 동정표조차 얻을 수 없는 불신앙의 모습이 아닐까?
이런 상황에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증거하지 못하는데, 그런 불 같은 시험 앞에 우리가 과연 믿음을 지키며 나아갈 수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의 믿음 없음을 긍휼히 여기사 오늘날 우리에게는 신사참배 문제를 허락하지 않으신 것이라 생각된다. 많은 분들의 그 당시의 신사참배의 문제에 대해 회개하는 마음과 언제나 빚진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시려는 모습 가운데서 비록 그 당시에는 실패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며, 용서를 구하시는 모습 속에서 존경함을 표한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 수많은 범죄와 잘못들이 공공연하게 기사화되고 피해자들이 나타나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고,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몇몇의 목회자들의 모습가운데 우리는 믿음의 선진들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나도 연약한 사람인지라 죄 가운데 넘어질 수 밖에 없고, 실수하며, 범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인간인지라 그것을 문제시 삼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부끄러운 범죄를 지었다면 그것을 인정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 신앙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 우리는 믿음의 선진들보다 뛰어난 믿음을 소유하지 못했다면 하나님 앞에 정직한 모습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를 비난하기보다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 되길 바란다.
내가 한국교회 상황 가운데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은 바로 교단 분열이었다. 성경에 성령은 하나이시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복음은 분열된 것을 하나로 묶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재의 한국교회 안에서의 분열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물론 교수님은 이 상황 자체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교회의 성장을 이룬 부분을 긍정적으로 보셨지만, 사실 아직도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교단의 분열은 곧 교단 정치와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안에서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지킬려고 노력한 흔적에 대해서는 충분히 보여지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마음이 아픈 현실이기는 하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분열이 극대화 되어 너무 많은 군소교단으로 나뉘어져서 수많은 교단의 난립은 오히려 이단에게 교회의 문을 내어준 결과가 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물론 다시 통합의 움직임이 있기는 하지만, 교단정치의 문제점들이 여전히 보여지는 아쉬운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역사가 힘들어 책을 읽기에는 어려움이 가득했지만 이 책을 통해, 수업내용을 통해 깨달은 여러가지는 참 귀한 통찰력을 내게 주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역사신학이라고 명명하며, 한국교회사는 한국신학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하는 것처럼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 여러가지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그저 어느 순간 나타난 현상인가? 예전에 나는 갑자기 나타난 문제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국교회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모든 일에는 전조현상과 배경등이 다 깔려 있다는 것이다.
내가 요즘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 은사주의에 대한 부분인데, 한국교회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런 여러가지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의 해답은 한국교회사를 통해 보여지듯이 한국 신학은 곧 미국 신학인 것이다. 미국에서 나타난 여러가지 신학과 방법론 등은 우리 한국 교회의 무 비판적 수용이며, 오히려 적극적인 수용자세를 통해 미국 교회의 문제점들이 그대로 한국교회 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미국신학의 문제점보다 더 큰 문제점을 떠안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것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다보니 우리나라, 동양권에서 가지고 있는 샤머니즘과 맞물려 우리가 모르는 문제점들까지 내재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왜 미국 신학의 노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가 하는 문제들은 한국교회사에서 보여지듯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한 선교전략에 의거하여 대부분의 많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미국유학길에 올라 공부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 결과 한국에는 폭발적인 부흥운동과 성장은 이루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그 홍역을 치르고 있는게 아닌가 한다. 물론 여기에서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를 높일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들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조금 넓어 진 것 뿐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사를 통해 현재의 직면해 있는 문제들을 볼 수 있고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이해의 폭을 넓혔다면, 앞으로의 신학공부와 여러가지 노력을 통해, 특별히 예언자적 혜안을 조금이라도 소유하여 앞으로 내 스스로 한국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 한국교회의 방향과 내가 목회하는 교회의 방향성을 올바로 정하고 목회에 전념할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그리고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예민한 그리고 여러가지 문제가 보이더라도 한국교회사를 통해 조금 보여지듯이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하며, 지금의 눈으론 이해가 되지 않고 문제의 진흙탕 속에서 뒹구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볼 때마다 함께 눈물로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까지 에벤에셀로 한국교회를 인도하신 하나님이 앞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분명히 한국교회를 통해 행하실 놀라운 일들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질타하는 것이 아닌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선 예배자, 목회자가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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