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절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논쟁이 있습니다.
바로 ‘친일’입니다.
누군가의 조부가 친일파였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증조부의 행적이 알려집니다. 유명인의 가족사가 공개되면서 갑자기 그 사람의 역사관까지 검증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면 여론은 대체로 두 갈래로 나뉩니다.
“조상이 친일파였다는 이유만으로 후손까지 비판하는 것은 연좌제다.”
반대편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친일의 혜택은 대대로 누리면서 책임을 이야기하면 연좌제라고 하는 것이 맞느냐?”
양쪽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모두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조상의 친일을 후손에게 물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을 조금 다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손에게 조상의 죄를 물을 수 있는가?
그리고 또 하나,
후손이 조상의 친일로 만들어진 혜택까지 아무런 질문 없이 물려받을 수 있는가?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전혀 다른 질문입니다.

조상의 죄는 후손의 죄가 아니다
먼저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조상이 친일했다고 해서 후손까지 친일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의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를 선택할 수도 없고 증조부를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행동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질 수도 없습니다.
우리 헌법 역시 자기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아들이 살인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기를 친 사람의 손자가 사기꾼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친일 행위를 했던 사람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까지 친일파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논쟁은 여기서 끝나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과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은 다르다
여기서 우리가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책임과 질문은 다릅니다.
조상의 죄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후손에게 물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물어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 사람이 정치인이나 공직자처럼 공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역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조상이 일제강점기에 친일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건 조상이 한 일이니까 나와는 상관없다.”
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조상의 삶과 나의 삶은 다르지만 잘못된 역사를 부정하지는 않겠다.”
저는 여기에서 중요한 차이가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조상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조상의 역사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친일 논쟁에서 왜 항상 ‘연좌제’가 등장할까?
친일 후손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연좌제’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단어가 때때로 너무 광범위하게 사용된다고 생각합니다.
후손을 단지 혈연 때문에 비난하고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친일 행위의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것까지 연좌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조상이 어떤 친일 행위를 했는지 연구하는 것도 연좌제일까요?
친일을 통해 어떤 재산을 형성했고 그것이 후손에게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연좌제일까요?
여기에는 조금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것으로 인정되는 일부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법적 제도가 시행된 적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단순하게 이해하면 후손의 재산을 빼앗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후손이라는 신분 자체가 아닙니다.
그 재산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의 문제입니다.
이 차이를 구분해야 합니다.

죄는 상속되지 않지만 재산은 상속된다
저는 친일 후손 논쟁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죄는 상속되지 않지만 재산은 상속됩니다.
친일 행위 자체는 개인의 행동입니다.
그 책임 역시 그 행동을 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친일을 통해 얻은 토지와 재산, 사회적 지위와 교육의 기회가 후손에게 이어졌다면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집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대가로 많은 토지를 받았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토지는 아들에게 넘어갑니다.
다시 손자에게 넘어갑니다.
그리고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땅의 가격이 수백 배 올랐습니다.
손자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친일은 할아버지가 한 것이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질문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친일의 대가로 만들어진 재산 역시 할아버지에게서 끝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죄는 상속되지 않았지만 이익은 상속되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 때문에 친일 후손 문제를 단순한 연좌제 논쟁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구분해야 할 세 가지 책임
저는 친일 후손 논쟁을 바라볼 때 적어도 세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법적인 책임입니다.
친일 행위를 직접 하지 않은 후손을 처벌해서는 안 됩니다.
조상의 죄 때문에 취업을 제한하거나 사회생활을 막거나 불이익을 준다면 그것은 연좌제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재산과 이익의 문제입니다.
친일 행위를 통해 형성된 재산이라면 그 재산이 현재 누구의 명의로 되어 있느냐만 볼 것이 아니라 처음에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세 번째는 역사를 대하는 태도의 책임입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후손에게 조상을 대신해서 사죄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조상의 친일 행위가 명백하게 확인되었는데도 역사 자체를 왜곡하거나 친일 행위를 미화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조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사람 자신의 선택입니다.

친일파의 후손과 친일을 옹호하는 사람은 다르다
우리가 반드시 구분해야 합니다.
친일파의 후손인 것과 친일을 옹호하는 사람인 것은 전혀 다릅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자신이 선택합니다.
자신의 증조부가 친일 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는다면 억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친일 행위가 명백하게 밝혀졌는데도 그것을 미화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것은 증조부의 선택이 아닙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의 선택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야 합니다.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해도 조상의 잘못을 인정하고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까지 조상과 똑같은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결국 우리가 판단해야 하는 것은 혈통이 아닙니다.
지금 그 사람이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가입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생각하면 문제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친일 후손 문제를 생각하다 보면 저는 자연스럽게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는 친일파의 후손에게 조상의 죄를 물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는 이야기도 반복해서 들려옵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내놓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가족을 떠나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투옥되고 고문받고 목숨까지 잃었던 사람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은 재산을 잃었습니다.
교육의 기회를 잃었습니다.
삶의 기반을 잃었습니다.
그 희생의 결과 역시 후손에게 이어졌습니다.
반면 일제에 협력하면서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얻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그 재산과 사회적 기반이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이상합니다.
독립운동의 희생은 후손에게 이어졌는데,
친일의 이익은 역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친일의 죄는 개인에게만 돌아가야 한다고 하면서 친일로 얻은 혜택이 세대를 넘어가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바로 이 질문 때문에 친일 문제는 광복 80년이 지나도 쉽게 끝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후손보다 우리가 역사를 정리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사실 저는 친일 후손 논쟁이 반복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해방 이후 친일 문제를 충분하게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어떤 친일 행위를 했는지,
그 행위의 정도는 어떠했는지,
친일의 대가로 어떤 이익을 얻었는지,
그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어떤 책임을 물을 것인지.
이 문제를 해방 직후 제대로 정리했다면 지금처럼 후손들이 논쟁의 한복판에 서는 일도 훨씬 적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문제가 세대를 넘어왔습니다.
그러다 유명인의 가족사가 알려질 때마다 갑자기 친일 문제가 폭발합니다.
한쪽에서는 말합니다.
“친일파의 후손이다.”
다른 쪽에서는 말합니다.
“연좌제다.”
그리고 사람들은 또 두 편으로 나뉘어 싸웁니다.
그런데 어쩌면 양쪽 모두 더 중요한 문제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친일 행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후손을 공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를 사실대로 기록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친일파’라는 말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친일파라고 규정하는 일입니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친일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관공서에서 근무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평가할 수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
어떤 행동을 했는가.
일제의 식민통치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협력했는가.
그 대가로 어떤 이익을 얻었는가.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서 역사 문제일수록 감정보다 사실이 먼저여야 합니다.
SNS에 누군가의 증조부 이름이 올라왔다고 곧바로 친일파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로 후손까지 공격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친일을 엄격하게 비판하는 것과 근거 없이 친일파를 만들어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오히려 무분별하게 ‘친일’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정말 우리가 기억하고 비판해야 할 친일 행위의 무게까지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광복절마다 친일 논쟁이 반복되는 이유
올해도 광복절이 다가오면서 친일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마 내년 광복절에도 비슷한 논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우리가 아직 친일 문제를 역사의 문제와 혈통의 문제로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조상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역사적 사실까지 덮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친일 행위가 있었다면 기록해야 합니다.
친일의 대가로 형성된 재산이 있다면 그 과정도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후손이 그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그 사람 자신의 태도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섞어버리면 논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조상의 죄를 묻지 말고 현재의 태도를 물어야 한다
결국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조상의 친일을 후손에게 물을 수 있을까요?
저는 조상의 죄 자체를 후손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죄는 혈통을 따라 내려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조상의 친일로 만들어진 이익이 있다면 그것은 별도로 살펴봐야 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다면 그것도 비판해야 합니다.
친일을 미화한다면 그것 역시 현재 그 사람의 행동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당신의 조상이 무엇을 했습니까?”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그 역사를 지금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저는 이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상은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대하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입니다.

광복절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광복절은 누군가의 조상을 찾아내 공격하는 날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불편한 역사를 덮어두는 날도 아닙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기록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은 기억해야 합니다.
일제에 협력하여 자신의 이익을 얻었던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역사에 남겨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기록이 후손을 향한 증오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과 후손을 미워하는 것은 다릅니다.
조상의 죄와 후손의 책임도 다릅니다.
그리고
조상의 죄를 물려받는 것과 조상이 만든 이익을 물려받는 것도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우리가 이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것.
그러면서도 친일의 역사를 잊지 않는 것.
독립운동가의 희생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역사를 왜곡하거나 미화하려는 시도에는 분명하게 말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광복절마다 반복되는 친일 논쟁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죄는 상속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는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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