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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책은 이렇게 많은데 왜 청년들은 삶이 나아졌다고 느끼지 못할까?

불타는 신디 2026. 8. 15.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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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년들을 위한 정책을 찾아보면 생각보다 정말 많습니다.

취업지원금이 있습니다.

청년월세지원도 있습니다.

자산형성을 돕는 적금도 있고, 창업지원도 있고, 직업훈련도 있고, 주거지원도 있습니다.

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까지 내려가면 청년이라는 이름이 붙은 정책은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정책은 계속 늘어나는데 청년들에게 물어보면 삶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듣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취업은 더 어렵다고 하고,

집을 구하는 것은 막막하다고 하고,

결혼은 부담스럽다고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저는 한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청년정책은 이렇게 많은데 왜 청년들의 삶은 나아졌다고 느껴지지 않을까요?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청년정책의 숫자가 아니라 청년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부도 인정한 ‘체감되지 않는 청년정책’

8월 14일 청와대에서는 청년정책 전문가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원래 예정된 시간은 90분이었지만 토론은 200분 가까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날 논의에서 나온 숫자였습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청년 관련 사업은 389개, 규모는 약 30조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적지 않은 숫자입니다.

그런데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공통된 지적이 나왔습니다.

정책은 많은데 청년들의 체감도가 낮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89개의 정책이 있다는 것은 정부가 청년 문제를 모르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30조 원이라는 예산 역시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청년의 삶이 정책의 숫자만큼 좋아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청년정책을 바라보는 방식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청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시작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20대 후반의 한 청년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학자금 대출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취업 준비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기업들은 신입사원을 뽑으면서도 경험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인턴을 해야 합니다.

자격증도 준비해야 합니다.

영어점수도 있어야 합니다.

직무교육도 받아야 합니다.

취업 준비기간이 길어집니다.

그동안 돈은 필요합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취업 준비할 시간이 줄어듭니다.

취업 준비를 하려면 아르바이트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그러면 생활비가 부족합니다.

이미 시작부터 꼬입니다.

우리는 흔히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조금만 더 노력해라.”

“스펙을 더 쌓아라.”

“눈높이를 낮춰라.”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청년 개인의 노력보다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과거보다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취업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장기 프로젝트가 되어버렸습니다.


취업이 늦어지는 것은 단순히 첫 월급이 늦어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 부분은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취업이 1년 늦어진다고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1년 늦게 취업하면 1년 늦게 돈을 벌면 되지.”

하지만 실제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취업이 늦어지면 경력을 쌓는 시점도 늦어집니다.

월급이 오르는 시점도 늦어집니다.

저축을 시작하는 시점도 늦어집니다.

독립도 늦어집니다.

결혼도 늦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택을 마련하기 위한 자산형성도 늦어집니다.

결국 첫 취업의 지연은 인생 전체의 시간표를 밀어버릴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은행의 분석에서도 청년의 미취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낮아지고, 소득에도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청년들의 취업문제가 단순히 “취업률 몇 퍼센트”의 문제가 아닌 이유입니다.

청년에게 첫 일자리는 단순한 직장이 아닙니다.

삶을 시작하는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취업을 해도 문제가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청년 문제를 취업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취업만 하면 어느 정도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취업을 하면 곧바로 다음 문제가 등장합니다.

바로 집입니다.

특히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직장을 구한 청년들에게 주거문제는 상당히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회사와 가까운 곳에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월세가 비쌉니다.

조금 저렴한 곳을 찾으면 통근시간이 길어집니다.

그러면 매일 한두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야 합니다.

집을 조금 넓히고 싶으면 월세가 올라갑니다.

월세를 줄이려면 집을 줄여야 합니다.

결국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은 첫 월급을 받자마자 월세와 관리비를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청년에게 이야기합니다.

“미래를 위해 저축하십시오.”

청년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저축할 수 있는 돈이 남지 않는 것입니다.


집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닙니다

청년 주거 문제를 단순히 “월세가 비싸다” 정도로 생각하면 문제의 본질을 놓칠 수 있습니다.

주거비는 청년의 다른 모든 선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월세가 올라가면 저축이 줄어듭니다.

저축이 줄어들면 자산형성이 늦어집니다.

자산형성이 늦어지면 결혼이나 독립 같은 중요한 선택을 미루게 됩니다.

교육비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자격증을 준비하는 데 쓸 돈도 부족해집니다.

여행이나 문화생활도 줄어듭니다.

결국 주거비는 단순한 집값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이 미래에 투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줄이는 문제가 됩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최근 청년층에서 고시원 같은 취약 거처를 이용하는 비중도 증가했고, 매우 좁은 공간에 거주하는 비율 역시 다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독립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독립할 수 있는 집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것 역시 모순입니다.


그래서 청년들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미루고’ 있습니다

요즘 청년들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연애를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포기하고,

집을 포기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표현이 청년들의 현실을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이 정말 결혼을 싫어하는 것일까요?

아이를 낳는 것이 싫은 것일까요?

집을 가지고 싶지 않은 것일까요?

물론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포기라기보다는 결정을 미루는 것에 가깝습니다.

취업이 안정되면.

돈이 조금 모이면.

집이 마련되면.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그때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그때’가 계속 뒤로 밀린다는 것입니다.

취업이 늦어지고,

소득은 빠르게 늘지 않고,

주거비는 높고,

자산가격은 더 멀리 달아나면 인생의 중요한 선택도 자연스럽게 뒤로 밀립니다.

그래서 저출생 문제 역시 단순히 출산지원금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아이를 낳을 때 돈을 조금 더 주는 것보다 먼저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 삶의 안정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청년정책은 왜 체감되지 않았을까?

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청년정책이 하나의 삶을 바라보지 않고 각각의 문제를 따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취업은 고용정책.

집은 주거정책.

대출은 금융정책.

결혼은 가족정책.

출산은 저출생정책.

복지는 복지정책.

행정기관의 입장에서는 분야가 나뉘어 있습니다.

하지만 청년의 삶에서는 이것이 전부 연결되어 있습니다.

취업이 안 되면 집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집이 불안정하면 결혼을 고민하게 됩니다.

소득이 낮으면 저축하기 어렵습니다.

자산이 없으면 주거를 안정시키기 어렵습니다.

결국 모든 문제가 하나의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책은 그 사슬의 한 부분씩만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청년들이 정책을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일 수 있습니다.


지원금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청년수당이나 월세지원, 취업지원 같은 정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지원금이 정말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월 20만 원의 월세지원이 절실한 청년도 있습니다.

몇 달간의 구직수당 덕분에 취업 준비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책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하는 것입니다.

청년에게 월세를 지원하면서 월세가 계속 상승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직수당을 지급하면서 좋은 일자리가 줄어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축을 지원하면서 집값이 더 빠르게 오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 지원정책은 필요하지만 동시에 구조를 바꾸는 정책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정상적인 출발선일지도 모릅니다

청년정책을 이야기하면 가끔 이런 반응이 나옵니다.

“우리 때는 그런 지원도 없었다.”

“요즘 청년들은 너무 많은 혜택을 받는다.”

틀린 이야기는 아닐 수 있습니다.

과거 세대에는 지금처럼 청년수당도 없었고 월세지원도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조건도 달랐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힘들었느냐를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청년과 현재 청년에게 주어진 기회의 구조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대에는 사회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기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회사에 들어가 경력을 쌓고,

소득이 증가하고,

저축을 하고,

집을 마련하는 사다리가 어느 정도 작동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삶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노력한 만큼 조금씩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지금 청년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아마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열심히 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확신이 약해졌다는 것.

이것은 돈 몇십만 원의 문제보다 훨씬 큰 문제입니다.


청년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청년정책을 바라보면서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미래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어야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열심히 일하면 5년 뒤 어느 정도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인지.

저축하면 집을 마련할 가능성이 있는지.

결혼하면 가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아이를 낳아도 삶이 무너지지 않을지.

이런 최소한의 예측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청년들이 느끼는 가장 큰 불안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쓰는 것도 불안하고,

결혼하는 것도 불안하고,

직장을 옮기는 것도 불안하고,

아이를 낳는 것도 불안합니다.

정책이 청년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지원금보다 먼저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인지도 모릅니다.


청년문제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청년 문제를 이야기하면 흔히 청년세대에만 해당하는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넓게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청년들이 취업하지 못하면 소비가 줄어듭니다.

결혼이 늦어지면 출산도 늦어집니다.

주거가 불안정하면 자산형성이 늦어집니다.

자산형성이 늦어지면 노후 준비도 늦어집니다.

결국 오늘의 청년문제는 10년 뒤의 가족문제가 되고,

20년 뒤에는 인구문제가 되며,

30년 뒤에는 복지와 재정의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청년정책은 특정 세대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에 투자하는 정책입니다.


389개의 정책보다 중요한 한 가지

정부는 앞으로 청년정책을 다시 정비하겠다고 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정책을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 먼저 물었으면 좋겠습니다.

청년들은 지금 어디에서 가장 많이 막히고 있는가.

취업인가.

주거인가.

소득인가.

교육인가.

자산인가.

그리고 이 문제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가.

389개의 정책을 400개로 만드는 것이 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389개의 정책 가운데 정말 필요한 것들을 연결하고, 청년이 삶의 흐름 속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사업이지만,

청년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청년에게 너무 오랫동안 노력하라고 말해왔습니다

“열심히 공부해라.”

“좋은 대학에 가라.”

“스펙을 만들어라.”

“눈높이를 낮춰라.”

“취업해라.”

“저축해라.”

“결혼해라.”

“아이를 낳아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청년들에게 정말 많은 것을 요구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회도 질문을 받아야 합니다.

청년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우리는 만들어 놓았는가.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는다고 걱정하기 전에 결혼할 수 있는 삶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걱정하기 전에 아이를 낳아도 괜찮은 사회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저축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전에 저축할 수 있는 소득과 주거환경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취업을 포기한다고 비난하기 전에 청년들이 들어갈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가 충분한지도 물어야 합니다.


문제는 청년들의 의지가 아니라 사회의 사다리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요즘 청년들을 보면서 의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치열합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자격증을 준비하고,

인턴을 하고,

취업시험을 준비하고,

아르바이트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노력하면서도 계속 불안합니다.

그래서 지금 청년문제를 바라볼 때는 개인의 태도보다 사회의 구조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노력하면 조금씩 앞으로 갈 수 있는 사회인지.

첫 직장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

월급으로 최소한의 독립생활을 할 수 있는지.

꾸준히 저축하면 미래가 조금씩 나아지는지.

이런 사다리가 작동해야 합니다.

정부가 389개의 청년정책을 만들어도 이 사다리가 무너져 있다면 청년들은 삶이 달라졌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결국 청년정책의 목표는 정책을 많이 만드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청년이 자신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취업할 수 있고,

독립할 수 있고,

저축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릴 수 있고,

아이를 낳고 싶다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

너무 평범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그 평범한 삶이 가장 어려운 꿈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제 질문은 이것이어야 합니다.

“청년에게 무엇을 더 줄 것인가?”가 아니라 “청년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어쩌면 청년정책의 진짜 출발점은 바로 그 질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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