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이 쓰는 정치칼럼

"지옥에나 가세요" - 피해자가 던진 그 한마디의 무게

불타는 신디 2026. 8. 3.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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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중도인 필자가 형사소송법 개정안 시리즈를 몇 편에 걸쳐 다뤘습니다.

법안은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이걸로 이 이야기는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사이 벌어진 일들을 보니, 아직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 저는 형소법 개정안의 공소기각 조항, 국회의장의 개헌 발언, 거부권을 둘러싼 공방, 정성호 법무부장관의 거부권 건의 거부까지 순서대로 짚어왔습니다.

법무부장관이 이미 "거부권 건의 계획은 없다"고 못 박았던 만큼, 저는 이 사안이 여기서 마무리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법안 통과 이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이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봉하마을에서 벌어진 일

법안 통과 다음 날인 지난 1일, 이 법안을 발의했던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제 밖에서 뵈었던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늘 아침 다시 묘역을 찾아 통과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영전에 올렸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님 '야~ 기분좋다~!!!!' 라고 하고 계시지요?"라는 문장까지 덧붙였습니다.

이 게시물에 댓글 하나가 달렸습니다.

"지옥에나 가세요."

댓글을 남긴 사람은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 김진주(가명)씨였습니다.

왜 그런 댓글을 남겼을까

이 시리즈를 계속 읽어오신 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저도 이 시리즈에서 여러 번 언급했던 사례입니다.

경찰이 처음엔 '중상해' 혐의로 사건을 송치했지만, 검찰의 보완수사를 통해 혐의가 살인미수, 나아가 강간 등 살인미수로 바뀌었던 그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2022년 부산의 한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낯선 남성이 피해자를 무차별 폭행한 사건으로, 당시 CCTV 영상이 공개되며 전 국민적인 공분을 샀습니다.

가해자는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처음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단순 폭행 사건 정도로 축소될 뻔했다는 사실이 이후 알려지며 더 큰 충격을 줬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검찰의 보완수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피해자 측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김씨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열린 '범죄 피해자가 바라보는 바람직한 형사소송법 개정 방향' 토론회에 직접 참석해, 보완수사권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완수사권 덕에 가해자 혐의가 '상해'에서 '강간 등 살인미수'로 바뀌었다. 보완수사가 없었다면 나는 성범죄 피해자임을 알 수 없었을 것이고 가해자는 이미 제 곁에 돌아왔을 것이다."

이 발언, 담담하게 읽어도 무게가 상당합니다.

법 조항 하나가 실제로 자신의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당사자가 직접 증언한 셈이니까요.

저는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법안을 만들고 통과시키는 사람들은 대개 통계와 원칙,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논쟁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법의 실제 영향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은, 통계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 하나로 그 법의 의미를 말합니다.

이 둘 사이의 온도차가, 이번 논쟁을 유독 무겁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우려를 공개적으로 밝혀온 당사자 앞에서, 법안을 발의한 의원이 축하하듯 묘역을 찾아 '기분 좋다'는 표현까지 쓴 겁니다.

김씨 입장에서 이 장면이 어떻게 비쳤을지, 짐작이 갑니다.

단순한 반발이 아니었습니다

김씨의 반응은 댓글 하나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SNS를 통해 훨씬 구체적인 요구를 내놨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이른바 거부권 행사를 공개적으로 요청한 겁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라면 이건 반드시 거부해야 한다."

그러면서 절충안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감정적 항의가 아니라, 실제 정책 대안을 담은 요구라는 점에서 더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분노만 표출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대안까지 함께 내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할 이유입니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 아닐까요.

성폭력, 스토킹, 교제폭력 사건은 정황증거가 특히 중요한 만큼, 최소한 이 세 유형의 사건에 대해서만이라도 보완수사권을 유지하는 재입법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법안이 시행되기 전 성폭력·스토킹·교제폭력 사건에 한해 보완수사를 존치하는 재입법을 약속하고 국민을 직접 설득해 달라. 설득이 안 된다면 이재명 대통령이 재의요구권 행사를 검토해 주기를 요청드린다."

전면 폐지도, 전면 유지도 아닌, 가장 취약한 피해자군만이라도 지켜달라는 절충안입니다.

저는 이 요구가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강경한 반대 구호를 외치는 대신, 구체적인 대안까지 함께 제시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전면 폐지든 전면 유지든 어느 한쪽을 강하게 주장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겪은 피해를 근거로, 딱 필요한 만큼의 예외만 요구하는 절제된 화법은 오히려 더 설득력을 갖습니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이 사안을 두고 정치권 반응도 즉각 갈렸습니다.

국민의힘은 같은 날 청와대 앞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며 헌법소원 심판 청구까지 예고했습니다.

한 야당 의원은 김용민 의원의 묘역 방문을 두고 "정치적 퍼포먼스"라며 날을 세웠습니다.

"개인적 정치적 이익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선택을 정치적 노리개로 쓰는 것이고, 그의 이름을 한낱 조롱거리로 만드는 것과 같다."

강한 표현이지만, 저도 이 부분은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법안 통과 자체를 자축하는 것과, 그 상징으로 전직 대통령의 묘역을 활용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특히 그 법안에 대해 실제 피해 당사자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조심스러웠어야 할 장면입니다.

민주당은 같은 날 오후 형사소송법 개정 국민보고회를 열어 법안의 필요성을 다시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양쪽 모두 이 사안을 그냥 넘기지 않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싶은 게 있습니다.

국민의힘의 대응 방식도 완전히 순수한 의도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헌법소원 청구 예고나 청와대 앞 최고위 회의는, 피해자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과 함께 정치적 공세라는 목적도 분명 섞여 있을 겁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김진주씨가 제기한 문제의식 자체까지 정치적 공세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 본인의 요구와, 그 요구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세력의 의도는 구분해서 봐야 하는 지점입니다.

이 논쟁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 저는 경찰 수사 독점, 약자 보호 공백, 국민의 소송 부담 증가라는 세 가지 우려를 짚어왔습니다.

이번 사안은 그중 '약자 보호 공백'이 추상적인 걱정이 아니라, 실제 피해자의 목소리로 확인된 사례라는 점에서 다른 무게를 가집니다.

여당의 입장도 완전히 근거 없는 건 아닙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정치검찰의 권한 남용을 막겠다는 개혁 취지 자체는 여전히 유효한 논의입니다.

다만 그 개혁이 옳다고 해서, 개혁의 부작용을 겪을 수 있는 특정 피해자군에 대한 보완책까지 자동으로 정당화되는 건 아닙니다.

김씨가 제안한 절충안, 즉 성폭력·스토킹·교제폭력 사건만이라도 보완수사권을 유지하자는 방안은, 법안 전체를 되돌리자는 요구가 아니라 가장 취약한 지점 하나를 메워달라는 요구입니다.

이 정도의 요구조차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그 이유를 국민 앞에 좀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실무적인 질문도 하나 짚어보겠습니다.

성폭력, 스토킹, 교제폭력 사건만 예외로 두는 재입법이 실제로 가능할까요.

법 기술적으로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 법률에서 특정 범죄 유형에 대해 예외 규정을 두는 방식은 흔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의지입니다.

전면 폐지라는 원칙을 지키고 싶은 여당 입장에서는, 예외를 하나둘 인정하기 시작하면 법안의 상징성 자체가 흔들린다고 우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칙과 상징성보다 우선해야 할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이런 범죄로 실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안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리하며

법안은 이미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사실상 결론이 난 사안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이 통과됐다고 해서, 그 법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을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함께 마무리되는 건 아닙니다.

댓글 한 줄로 시작된 이 논쟁이, 실제로 재입법 논의나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검토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적어도 이 목소리만큼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자축하는 사이, 그 법 때문에 밤잠을 설칠 수도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이번 일이 다시 한번 보여줬습니다.

정치인들의 SNS 게시물 하나가 이렇게 큰 파장을 낳는 걸 보면서, 저는 새삼 정치인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무거운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 그것도 실제 피해자가 있는 사건과 관련된 법안이라면, 그 법안을 다루는 정치인들의 언행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신중해야 합니다.

자신의 성과를 자축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성과의 이면에 여전히 목소리를 내고 있는 당사자가 있다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자축보다 경청이 우선이었어야 합니다.

이번 사안이 실제로 재입법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이대로 잊혀질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이 블로그를 통해 이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더 많이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남깁니다.

이 논의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재입법이든 거부권이든, 실질적인 변화가 있다면 반드시 다시 이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한 사람의 절박한 목소리가, 이번만큼은 정치적 셈법에 묻히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댓글 한 줄이 이렇게 큰 울림을 만들어낸 것처럼, 앞으로도 이런 목소리들이 정치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나가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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