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인들은 왜 광복절마다 야스쿠니를 찾을까?
— 우리가 야스쿠니 참배에 분노하는 진짜 이유

8월 15일.
우리에게는 광복절입니다.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8월 15일은 조금 다릅니다.
일본에서는 이날을 ‘종전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해마다 이때가 되면 반복해서 등장하는 뉴스가 있습니다.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입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집권 자민당의 주요 간부들이 8월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더구나 이번에는 자민당 핵심 당직자들이 함께 움직이는 이례적인 모습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에게는 익숙한 뉴스일 것입니다.
일본 정치인이 야스쿠니를 참배합니다.
한국과 중국이 항의합니다.
일본은 전몰자를 추모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면 조용해집니다.
다음 해 8월 15일이 되면 비슷한 일이 또 반복됩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오래전부터 한 가지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일본 정치인들은 한국과 중국이 반발할 것을 뻔히 알면서 왜 계속 야스쿠니신사를 찾는 것일까요?
단순히 우리를 자극하기 위해서일까요?
조금 더 살펴보면 야스쿠니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문제를 통해 일본이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도 볼 수 있습니다.

야스쿠니신사는 원래 무엇을 하는 곳일까?
야스쿠니신사는 도쿄 한복판에 있습니다.
그 시작은 메이지유신 시기까지 올라갑니다.
1869년 메이지 정부가 내전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만든 시설이 그 출발점입니다.
이후 일본이 전쟁을 벌일 때마다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들이 이곳에 합사됐습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일본이 근대국가와 제국으로 팽창하는 과정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야스쿠니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현재 야스쿠니신사에는 약 246만 명이 합사돼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보수세력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이 주장만 놓고 보면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느 나라든 전쟁에서 죽은 군인을 추모합니다.
우리나라에도 현충원이 있습니다.
미국에도 알링턴 국립묘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과 중국은 유독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요?

문제는 야스쿠니에 ‘누가’ 함께 있는가입니다
야스쿠니 문제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태평양전쟁을 이끌었던 A급 전범 14명도 합사돼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도조 히데키입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총리였던 인물입니다.
일본이 패전한 뒤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 흔히 도쿄재판이라고 부르는 재판에서 전쟁범죄 책임을 물어 처형됐습니다.
그런데 1978년 이들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했습니다.
이때부터 야스쿠니의 의미는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단순히 전쟁에서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공간이 아니라,
침략전쟁의 책임을 물어 처벌받은 사람들까지 함께 모시는 장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 총리나 정치 지도자가 야스쿠니에 참배하면 주변국에서는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전쟁을 일으킨 책임자까지 추모하는 것인가?”
이 질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하나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전쟁에서 죽은 모든 일본인을 전범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야스쿠니에 합사된 246만여 명 모두가 전쟁범죄자는 아닙니다.
평범한 병사들도 많았습니다.
국가의 명령에 따라 전쟁터로 끌려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전쟁의 희생자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인 가운데에는 야스쿠니 참배를 전쟁 찬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를 추모하는 문제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을 인정해야 야스쿠니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서 더 어려운 질문이 생깁니다.
전쟁에서 죽은 평범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과 그 전쟁을 일으킨 책임자들을 함께 기리는 것은 같은 일일까요?
야스쿠니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은 왜 A급 전범을 분리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간단한 해결책이 하나 떠오릅니다.
A급 전범만 야스쿠니에서 분리하면 되지 않을까요?
실제로 일본에서도 이런 주장이 오랫동안 나왔습니다.
전쟁 희생자를 추모할 별도의 국립시설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신도의 종교적 논리에 따르면 한 번 합사된 영혼을 인간의 행정적 판단으로 다시 분리하는 것이 어렵다는 입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문제가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그 뒤에는 일본 정치와 역사인식이라는 훨씬 복잡한 문제가 있습니다.

야스쿠니는 종교시설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공간입니다
야스쿠니신사는 단순한 묘지가 아닙니다.
일본 고유의 신앙인 신도 시설입니다.
그런데 근대 일본에서 야스쿠니는 국가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전쟁에서 죽으면 야스쿠니의 신이 된다.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은 영광이다.
천황과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은 영원히 기억된다.
이런 논리가 일본 군국주의 시대에 국민을 전쟁으로 동원하는 정신적 장치 가운데 하나로 작동했습니다.
그래서 야스쿠니는 단순한 추모시설이라고만 말하기 어렵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기억이 함께 남아 있는 공간입니다.
한국이 야스쿠니를 바라볼 때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 전쟁과 식민지배의 피해를 입은 나라였습니다.

일본에게 8월 15일과 우리에게 8월 15일은 전혀 다른 기억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에서 8월 15일은 광복절입니다.
나라를 되찾은 날입니다.
식민지배가 끝난 날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날은 패전 또는 종전의 기억과 연결됩니다.
같은 날짜인데 기억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한국은 묻습니다.
“왜 일본은 우리를 식민지배했는가?”
일본에서는 또 다른 질문이 등장합니다.
“왜 우리는 전쟁에서 패했는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질문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가해의 책임을 묻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패배의 경험을 돌아봅니다.
바로 이 차이가 일본의 역사인식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중요합니다.

‘패전의 기억’과 ‘가해의 기억’은 다릅니다
전쟁에서 패했다는 기억은 자신 역시 피해자였다는 감각을 만들 수 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습니다.
도쿄대공습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죽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일본군이 사망했습니다.
일본 국민도 전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기억이 멈출 때입니다.
“우리도 전쟁 때문에 고통받았다.”
여기까지만 기억하면 중요한 질문 하나가 사라집니다.
그 전쟁은 왜 시작됐는가?
일본군은 왜 중국에 있었는가.
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는가.
왜 동남아시아까지 전쟁을 확대했는가.
누가 전쟁을 결정했는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피해의 기억만 강조하면 가해의 역사가 흐려질 수 있습니다.
야스쿠니 논쟁이 민감한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본 정치인들은 왜 계속 야스쿠니를 찾을까?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실제로 전몰자에 대한 추모입니다.
모든 일본 정치인의 참배 동기를 군국주의 찬양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일 수 있습니다.
일본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참배를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행위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 보수층의 역사관과 정치적 지지입니다.
야스쿠니 문제는 일본 보수정치에서 하나의 상징이 되어왔습니다.
“왜 일본인이 일본의 전몰자를 추모하는데 외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가?”
이런 정서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야스쿠니 참배는 단순한 종교행위가 아니라 보수층에게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야스쿠니 참배는 일본 국내정치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 참배를 볼 때 주로 한일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왜 한국을 자극하는가?”
그런데 일본 정치인은 반드시 한국을 향해서만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일 수 있습니다.
“나는 일본의 역사와 전통을 지킨다.”
“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잊지 않는다.”
이런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한국과 중국이 강하게 반발할수록 오히려 일본 국내 보수층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외교적으로는 손해가 되더라도 국내 정치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야스쿠니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올해 참배 움직임이 조금 특별한 이유
올해는 자민당의 주요 당직자들이 8월 15일 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과거에도 자민당 정치인들의 개별 참배는 반복됐습니다.
그러나 당 핵심 지도부가 함께 참배하는 모습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신앙이나 추모의 문제라고만 설명하기 더 어려워집니다.
개인이 조용히 참배하는 것과 집권당의 핵심 지도부가 함께 움직이는 것은 정치적으로 전달되는 메시지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올해 야스쿠니 문제를 조금 더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총리들은 왜 조심스러워할까?
여기서 재미있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일본 보수 정치인들에게 야스쿠니는 중요한 상징이지만 총리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일본 총리는 국내정치만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과의 관계.
중국과의 관계.
미국과의 관계.
동아시아 안보.
경제협력.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실제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한중 관계를 급격히 악화시킨 사례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입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재임기간 반복적으로 야스쿠니를 참배했고 2006년에는 8월 15일 직접 참배했습니다.
아베 신조 전 총리 역시 2013년 야스쿠니를 참배했습니다.
당시 한국과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심지어 일본의 동맹국인 미국 정부도 실망감을 공개적으로 표시했습니다.
그만큼 야스쿠니 참배는 단순한 일본 국내 문제가 아닙니다.
동아시아 외교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독일은 어떻게 했을까?
일본의 전쟁 책임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나 독일과 비교하게 됩니다.
독일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의 가해국이었습니다.
나치 독일은 유럽을 침략했고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전후 독일이 선택한 방식은 상당히 달랐습니다.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면서도 나치 지도자들을 국가적 추모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치의 범죄를 교육하고 기억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베를린 한복판에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추모하는 거대한 공간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는 대신 기억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나타납니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것과 전쟁을 일으킨 체제를 정당화하는 것을 분리한 것입니다.
물론 독일과 일본을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두 나라의 역사적 조건은 다릅니다.
전후 처리 과정도 달랐습니다.
냉전의 구조도 달랐습니다.
국가체제와 종교문화 역시 다릅니다.
따라서 “독일은 했는데 일본은 왜 못하느냐”는 말만으로 모든 문제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은 남습니다.
가해국은 자신의 전쟁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이 질문만큼은 독일과 일본 모두 피할 수 없습니다.
일본도 사과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도 정확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에서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밝혔습니다.
이후 일본 정부의 여러 담화에서도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표현됐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한쪽에서는 사과합니다.
그런데 다른 쪽에서는 야스쿠니를 참배합니다.
한쪽에서는 식민지배를 반성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정치인은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문제를 축소하거나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합니다.
그래서 피해국의 입장에서는 묻게 됩니다.
“도대체 어느 쪽이 일본의 진짜 모습인가?”
말과 행동이 다르게 보일 때 사과의 진정성까지 의심받게 되는 것입니다.

야스쿠니 문제의 핵심은 결국 ‘기억의 방식’입니다
저는 야스쿠니 문제를 단순히 신사참배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입니다.
일본이 전쟁에서 죽은 자국민을 추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의 가족이 죽은 이를 기억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가 공식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 행동을 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특히 그 장소에 침략전쟁의 책임자들이 함께 합사돼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정치 지도자의 행동은 개인의 추모를 넘어 국가의 역사인식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야스쿠니 참배에 분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이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 참배에 반발하는 이유를 단순히 반일감정으로 설명하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됩니다.
우리에게 일제강점기는 먼 나라의 전쟁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이름을 바꾸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우리말과 문화를 억압받았습니다.
강제동원과 일본군 위안부 같은 피해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삶을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그 침략전쟁의 책임자들이 합사된 장소를 일본의 정치 지도자가 찾아가 고개를 숙인다면 피해를 경험한 나라에서는 당연히 질문하게 됩니다.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추모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일본이 충분히 답하지 못했기 때문에 야스쿠니 문제는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감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광복절이 되면 일본을 비판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일본 사회에서 이런 역사인식이 반복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일본의 전후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수정치와 야스쿠니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일본의 젊은 세대는 식민지배와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왜 역사문제가 일본의 선거와 정치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지.
이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용서하거나 동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대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역사를 잊지 않는다는 것은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광복절이 되면 늘 비슷한 말이 등장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영원히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기억하는 이유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과거를 정확하게 알고,
가해와 피해를 구분하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하고,
그 위에서 다음 세대가 더 나은 관계를 만들도록 하는 것.
저는 그것이 역사 기억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화해에는 기억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한일관계가 좋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떨어질 수 없는 이웃입니다.
경제적으로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북한 문제와 동북아시아 안보에서도 협력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문화적으로는 이미 두 나라의 젊은 세대가 서로의 음악과 드라마, 애니메이션과 음식을 자연스럽게 즐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과거를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제대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상처를 감춘다고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대로 바라보고 인정해야 다음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일본이 야스쿠니에서 정말 고민해야 할 질문
일본 정치인들은 말합니다.
“전몰자를 추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맞습니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 질문에도 답해야 합니다.
누구를 추모하는가.
그리고
어떤 전쟁을 기억하는가.
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그 참배가 어떻게 보이는가.
정치 지도자라면 자신의 마음만큼이나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의미로 전달되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국가의 지도자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8월 15일, 같은 날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두 나라
8월 15일이 되면 한국에서는 태극기가 걸립니다.
우리는 해방을 기억합니다.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합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운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같은 날 일본에서는 전쟁의 종결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일부 정치인들은 야스쿠니를 찾습니다.
같은 날입니다.
하지만 전혀 다른 기억입니다.
어쩌면 한일관계의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식민지배의 끝을 기억하고, 일본은 전쟁의 끝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일본이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만 기억해서는 안 됩니다.
그 전쟁이 어떻게 시작됐고,
누구에게 어떤 피해를 주었으며,
왜 패전으로 끝났는지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야스쿠니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81년이 지났습니다.
일제강점기를 직접 경험한 세대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스쿠니 문제는 아직도 뉴스가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과거에 집착해서만은 아닙니다.
과거를 바라보는 현재의 태도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현재의 선택입니다.
일본 정치인이 오늘 야스쿠니를 찾는 것도 현재의 선택입니다.
한국이 그것을 비판하는 것도 현재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어떤 역사를 가르칠 것인지 역시 우리의 선택입니다.
그래서 이번 광복절에 저는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 참배를 보면서 단순히 “또 시작됐구나”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한 가지 질문을 다시 던지고 싶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기억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과의 말을 반복하는 것일까요.
기념일마다 고개를 숙이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잘못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을 현재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일까요.
저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반성은 과거에 대해 어떤 말을 했느냐보다,
오늘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를 통해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스쿠니 문제는 단순히 81년 전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도 이 문제를 바라보는 이유는 과거 때문만이 아니라,
오늘 일본이 그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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