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8월 15일 광복절입니다.
거리에는 태극기가 걸리고, 우리는 81년 전 그날을 기억합니다.
1945년 8월 15일.
35년간 이어진 일제강점기가 끝났습니다.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날을 ‘광복’이라고 부릅니다.
빛을 다시 찾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조금 흥미로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새로운 광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습니다.
광복은 이미 81년 전에 이루어진 것 아닌가?
우리는 이미 독립국가이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됐습니다.
대한민국 여권을 들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고, 우리의 음악과 드라마와 음식이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026년 대한민국에 다시 광복이 필요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저는 오늘 대통령의 경축사를 들으면서 오히려 이런 질문을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광복은 정말 1945년에 끝난 것일까?

‘광복’이라는 말에는 생각보다 깊은 뜻이 있습니다
광복이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재미있습니다.
光復.
빛 광(光).
돌아올 복(復).
말 그대로 **‘빛을 되찾는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일본이 물러갔다는 의미보다 더 깊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잃어버렸던 주권을 되찾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1945년의 광복은 단순한 전쟁의 종료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삶을 다른 나라가 결정하던 시대가 끝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나라가 독립했다고 모든 사람이 자유로워지는 것일까요?
국경을 되찾았다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광복’이라는 표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말한 네 가지 ‘새로운 광복’
오늘 이재명 대통령은 새로운 광복을 네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희망의 광복.
기회의 광복.
균형의 광복.
그리고
평화의 광복.
저는 이 네 단어가 흥미로웠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지금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이 부족하고,
기회가 불평등하며,
지역 간 격차가 크고,
한반도에는 여전히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81년 전 광복이 나라를 되찾는 일이었다면,
대통령은 이제 국민의 삶 속에서 자유와 기회를 되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광복이라는 말을 확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대통령의 정치적 구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적 평가를 떠나 이 질문 자체는 한번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2026년 대한민국이 정말 자유로운 나라인가?

우리는 분명 자유로운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자유롭게 대통령을 선출합니다.
정부를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직업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도 있습니다.
인터넷에 자신의 생각을 쓸 수도 있습니다.
81년 전 이 땅을 살았던 사람들과 비교하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제강점기와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당연히 적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유에는 또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법적 자유가 있는 것과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결혼할 자유는 있지만 결혼할 수 없는 사람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누구도 청년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결혼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청년들이 결혼을 미룹니다.
왜 그럴까요?
좋은 직장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집값이 비쌉니다.
월세 부담이 큽니다.
아이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걱정됩니다.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도 미룹니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미룹니다.
독립하고 싶어도 부모의 집에 머뭅니다.
법적으로는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선택지는 좁아져 있습니다.
이것을 1945년의 광복과 같은 의미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유라는 것을 조금 더 넓게 생각한다면 질문은 달라집니다.
사람에게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것은 단지 국가가 방해하지 않는 것만을 의미할까요?
아니면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까지 필요한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기회의 광복’이라는 표현을 눈여겨봤습니다
대한민국은 기회의 나라였던 적이 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도 공부하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집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보다 자녀 세대가 더 잘살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물론 현실이 언제나 그렇게 공평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듣습니다.
“부모의 자산이 중요하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느냐가 중요하다.”
“무슨 대학을 나왔느냐가 중요하다.”
“이미 자산을 가진 사람이 훨씬 유리하다.”
사람들이 노력의 가치를 믿지 않기 시작하면 사회는 상당히 위험해집니다.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노력해도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회의 광복이라는 말은 꽤 무거운 표현입니다.
기회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이미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또 하나의 장벽은 ‘어디에서 태어났는가’입니다
대통령은 오늘 ‘균형의 광복’도 이야기했습니다.
이것 역시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의 인구와 자원은 수도권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좋은 대학도 수도권에 많습니다.
좋은 일자리도 수도권에 몰려 있습니다.
문화시설도 그렇습니다.
대형병원도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방에서 태어난 청년들은 대학이나 직장을 찾아 수도권으로 올라옵니다.
수도권 인구는 더 늘어납니다.
집이 부족해집니다.
집값이 올라갑니다.
정부는 수도권에 다시 집을 공급합니다.
그러면 사람은 더 몰립니다.
악순환입니다.
우리는 흔히 지방소멸을 출생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방에서 살아도 괜찮은 삶이 가능한가?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고,
아이를 교육할 수 있고,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고,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다면 굳이 모든 사람이 서울로 올라올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택지가 없다면 사람들은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살고 싶은 곳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이동해야 하는 사회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경축사에서 AI 이야기가 나온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인공지능과 첨단산업을 이야기했습니다.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광복절은 역사 이야기인데 왜 AI를 이야기할까요?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연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기술 패권 경쟁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AI.
반도체.
배터리.
로봇.
바이오.
에너지.
이 기술들을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국가의 경쟁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군사력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했다면 지금은 기술력과 경제력이 국가의 자율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독립국가라고 해서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독립된 국가입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다른 나라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핵심 반도체를 만들 수 없다면.
AI 기술을 외국 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한다면.
핵심 원자재를 특정 국가에만 의존한다면.
법적으로는 독립국가이지만 실제 국가의 선택지는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국가 주권에는 기술주권과 경제안보라는 개념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이 이야기한 ‘대체 불가 대한민국’이라는 표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가 무시할 수 없는 나라.
세계가 필요로 하는 기술과 산업을 가진 나라.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이 살아남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질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국가가 부강해지면 국민도 자동으로 행복해질까요?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적인 경제강국입니다.
반도체를 만듭니다.
자동차를 수출합니다.
조선업에서도 강합니다.
K팝과 드라마는 세계적으로 소비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나라의 위상은 계속 높아지는데 많은 국민은 자신의 삶이 더 좋아졌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청년은 취업을 걱정합니다.
중년은 자녀교육과 주거비를 걱정합니다.
노년은 노후를 걱정합니다.
자영업자는 매출을 걱정합니다.
직장인은 미래를 걱정합니다.
그래서 국가의 성장만으로 새로운 광복을 이야기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성장의 결과가 국민의 삶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대통령 역시 오늘 경축사에서 혁신의 성과와 미래 성장의 기회가 전국의 국민에게 고루 퍼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것이 ‘새로운 광복’이라는 말이 실제 의미를 가지려면 반드시 증명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의 광복’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희망은 말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희망을 가지십시오.”
라고 말한다고 사람이 희망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희망에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내가 노력하면 조금 나아질 수 있다는 경험.
아이를 낳아도 괜찮겠다는 믿음.
회사가 갑자기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안정감.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신뢰.
노후에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확신.
이런 것이 쌓이면서 사람은 미래를 계획합니다.
그래서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은 좋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미래를 계획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것이 ‘평화의 광복’입니다
대한민국은 1945년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곧 분단되었습니다.
1950년에는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됐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한국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법적·군사적으로는 정전 상태입니다.
전쟁을 잠시 멈춘 것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오늘 북한을 향해 오래된 전쟁을 끝내기 위한 당사자 간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북한의 핵무기가 있습니다.
미사일이 있습니다.
한미동맹이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있습니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도 있습니다.
북한을 무조건 믿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영원히 적대하며 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평화는 구호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입니다.

평화는 북한을 믿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남북관계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 사회는 금방 두 편으로 나뉩니다.
“북한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래도 대화해야 한다.”
그런데 저는 이 두 문장이 반드시 반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북한을 무조건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대화할 수 있습니다.
강한 억지력을 유지하면서도 전쟁을 막기 위한 협상을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국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을 지키는 가장 좋은 결과는 결국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보와 평화를 서로 반대말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안보의 최종 목적이 평화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광복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대통령은 미래를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AI.
첨단산업.
경제성장.
지역균형.
한반도 평화.
모두 중요합니다.
하지만 광복절에는 반드시 뒤를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직업을 포기했습니다.
누군가는 가족을 떠났습니다.
누군가는 재산을 독립운동에 사용했습니다.
누군가는 감옥에 갔습니다.
누군가는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꿈꾼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일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나라.
그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2026년의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할까?
저는 오늘 광복절에 이 질문을 한번 던져보고 싶습니다.
81년 전에는 분명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넘어야 할 장벽은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태어난 집안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체념.
서울에서 살지 않으면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현실.
아이를 낳으면 삶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두려움.
열심히 일해도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렵다는 좌절.
남과 북이 언제든 충돌할 수 있다는 불안.
세대와 지역과 이념으로 서로를 미워하는 정치.
그리고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면 국가의 미래가 흔들릴 수 있다는 새로운 위기.
이런 것들이 어쩌면 우리가 넘어야 할 새로운 장벽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광복’이라는 말에는 위험도 있습니다
저는 이 표현을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광복은 우리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역사적 사건과 오늘날의 정책과제를 너무 쉽게 동일시하면 오히려 광복의 역사적 의미가 희석될 수도 있습니다.
정치적 슬로건으로만 소비되어서도 안 됩니다.
대통령이 ‘새로운 광복’을 말했기 때문에 새로운 광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결과로 증명해야 합니다.
기회의 광복을 말한다면 실제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살아나야 합니다.
균형의 광복을 말한다면 지방에서도 좋은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희망의 광복을 말한다면 국민이 내년을 올해보다 덜 두려워해야 합니다.
평화의 광복을 말한다면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실제로 낮춰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좋은 표현 하나가 또 하나의 정치적 구호로 끝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광복은 한 번 완성하고 끝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역사를 보면 자유는 한번 얻었다고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1945년 광복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곧 분단되었습니다.
전쟁을 겪었습니다.
독재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다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습니다.
그 과정을 거쳐 오늘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광복을 조금 넓게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광복은 단순히 과거의 한 날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억압하는 것으로부터 계속 자유를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1945년의 광복과 오늘의 사회문제를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선조들이 되찾은 주권 위에서 우리가 더 나은 자유를 만들어갈 책임이 있다는 점만큼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81년 전 선조들이 되찾은 것은 결국 ‘선택할 권리’였습니다
저는 광복의 의미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 이 단어로 돌아오게 됩니다.
선택.
우리나라의 미래를 우리가 선택할 권리.
어떤 정부를 만들지 선택할 권리.
어떤 사회를 만들지 선택할 권리.
아이들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줄지 선택할 권리.
81년 전 선조들은 그 선택권을 되찾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선택권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우리의 몫입니다.
경제적으로 강한 나라를 만들 것인지.
기회가 공평한 나라를 만들 것인지.
서울과 지방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 것인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 것인지.
전쟁의 위험을 줄이고 평화를 만들어갈 것인지.
이것은 더 이상 독립운동가들이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광복’을 이렇게 이해하고 싶습니다
오늘 대통령이 말한 새로운 광복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정책은 평가받아야 하고,
정부의 말은 결과로 검증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치적 평가와 별개로 이 질문만큼은 우리 모두가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81년 전 누군가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내놓았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오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책임은 그 나라를 단순히 물려받는 데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 더 자유로운 나라.
조금 더 공정한 나라.
어디에서 태어났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나라.
노력하면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나라.
전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그리고 서로 생각이 달라도 적으로 여기지 않는 나라.
그런 나라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2026년 우리가 만들어야 할 ‘새로운 광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광복은 1945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선조들이 되찾아준 빛을 어디까지 밝힐 것인가는 아직 우리에게 남겨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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