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를 보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원팀이 되어야 한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나오고, 당내 갈등이 생겼을 때도 나오고,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관계를 설명할 때도 등장합니다.
듣기에는 좋은 말입니다.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데 서로 싸우는 것보다 힘을 합치는 것이 훨씬 나아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원팀’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정치에서 원팀이라는 것은 어디까지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뜻일까요?
그리고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을 했을 때도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말 좋은 집권여당일까요?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의 등장과 함께 이 질문이 다시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김민석이 민주당의 새로운 대표가 됐다
2026년 8월 17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김민석 후보가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됐습니다.
최종 득표율은 54.08%.
정청래 후보는 45.92%였습니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선호투표까지 진행된 끝에 김민석 후보가 최종 승자가 됐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당선 이후 김민석 대표가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이 무엇이었느냐는 것입니다.
김 대표는 대통령과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도 당이 독자적인 역할을 하는 **‘전면 협력의 창조적 수평관계’**를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취임 다음 날에는 대통령실 인사들과 만나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사실상 벽 없는 원팀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취지의 메시지도 내놓았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방향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의 관계를 갈등보다 협력에 두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협력’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수평관계’를 함께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왜 굳이 ‘수평’이라는 말을 붙였을까요?

대통령과 여당은 같은 편이다
기본적으로 집권여당과 대통령은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이 선거에서 약속한 정책을 실제 법으로 만들려면 국회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예산을 확보하려 해도 여당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중요한 정책마다 공개적으로 충돌한다면 국정운영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당청 협력 자체를 문제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여당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대통령실과 여당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면 국민 입장에서도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집권 초기에는 강한 당정 협력이 국정 안정의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입니다.
협력과 종속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집권여당은 대통령을 돕는 정당인가
아마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같은 당에서 나온 대통령인데 당연히 도와야 하는 것 아닌가?”
맞습니다.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한 단어를 더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이라면 무조건 통과시키는 것이 도움일까요?
여론이 좋지 않아도 대통령의 입장만 방어하는 것이 도움일까요?
인사 실패나 정책 실패가 나타났는데도 침묵하는 것이 대통령을 위한 일일까요?
단기적으로 보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과 여당 사이의 갈등이 드러나지 않으니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대통령과 정부를 더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통령 주변에서
“이건 아닙니다.”
라고 이야기해 줄 사람이 점점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적 수평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수평이다
김민석 대표가 내놓은 표현은 그래서 흥미롭습니다.
대통령과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수평관계’를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김 대표는 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뛰겠다고 하면서도 토론하고 직언하며 민심의 창구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사실 앞으로 김민석 지도부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이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정부 정책을 얼마나 많이 통과시켰느냐보다,
대통령실이 듣기 싫어할 수 있는 민심까지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느냐.
저는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에 좋은 이야기만 전달하는 집권여당이라면 대통령실의 또 다른 조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어려울 때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해 거리를 두기만 한다면 그것 역시 집권여당의 책임 있는 모습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두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정부를 돕되 종속되지 않고,
대통령과 협력하되 필요한 순간에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은 쉽습니다.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번 전당대회 결과도 완벽한 한쪽 선택은 아니었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모습이 나타납니다.
당대표에는 김민석 후보가 선택됐지만 최고위원 선거 결과까지 보면 당내 여러 성향의 인사들이 지도부에 함께 들어왔습니다.
이 결과를 단순히 민주당 당원들이 한쪽 노선을 완전히 선택했다고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오히려 민주당 지지층 안에 두 가지 요구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나는 이재명 정부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다른 하나는 민주당 자체의 개혁성과 정당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평소에는 두 요구가 크게 충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정부가 원하는 방향과 당원들이 원하는 방향이 달라지는 순간입니다.
그때가 되면 민주당 지도부가 실제로 무엇을 우선하는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대통령 지지율이 좋을 때는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당청 일체의 위험은 대통령 지지율이 높고 정부가 안정적일 때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정부가 잘하고 있을 때는 대통령과 여당이 함께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강점이 됩니다.
성과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는 항상 좋은 상황만 이어지지 않습니다.
부동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경제가 예상보다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인사 문제가 터질 수도 있습니다.
외교·안보 문제에서 국민 여론과 정부의 판단이 엇갈릴 수도 있습니다.
그때 대통령과 여당이 지나치게 하나로 묶여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정부의 실패가 곧 여당의 실패가 됩니다.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여당으로 그대로 이동합니다.
반대로 여당이 정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민심을 전달할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집권여당에는 묘한 역할이 요구됩니다.
같은 배를 타고 있으면서도 방향이 잘못됐을 때는 방향을 바꾸자고 말해야 합니다.

충성보다 어려운 것은 직언이다
정치에서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정부 정책을 지지한다고 발표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고 당내 영향력이 강할 때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입니다.
특히 대통령과 가까운 정치인일수록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김민석 대표에게 앞으로 중요한 것은 이재명 대통령과 얼마나 가까운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반대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가까운 관계에서도 필요한 순간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가까운 사람이 하는 직언은 때로 야당의 공격보다 더 강력한 견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집권여당은 대통령을 지키는 정당일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좋은 집권여당은 어떤 정당일까요?
대통령이 공격받을 때마다 방어하는 정당일까요?
대통령의 정책을 가장 빨리 법으로 만들어주는 정당일까요?
물론 그것도 집권여당의 역할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는 집권여당의 또 다른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전달하는 것입니다.
야당이 비판하기 전에 문제를 발견하고,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민심의 변화를 감지하고,
대통령의 판단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 전에 멈춰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대통령을 진짜로 돕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김민석 체제의 진짜 시험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김민석 대표는 민주당의 언어와 정책, 태도와 문화를 변화시키겠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정치에서 평가는 말보다 상황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정부 정책이 국민에게 환영받을 때는 누구나 함께할 수 있습니다.
진짜 시험은 정부의 판단과 민심이 엇갈릴 때 시작됩니다.
그때 민주당이 대통령실의 논리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정당이 될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목소리를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정당이 될 것인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사실 두 역할 모두 필요합니다.
그러나 저는 후자의 역할이 사라지는 순간 집권여당의 존재 이유도 상당 부분 약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원팀’이라는 말보다 중요한 것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원팀은 좋은 것일까요?
저는 원팀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어떤 원팀인가입니다.
서로 잘못을 말하지 못하는 원팀과,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아주는 원팀은 전혀 다릅니다.
대통령과 여당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반드시 갈등인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건강한 긴장이 정부의 더 큰 실패를 막아줍니다.
김민석 대표가 이야기한 ‘창조적 수평관계’가 실제 정치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취임 초기이기 때문에 지금 성공과 실패를 단정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한 장면을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민주당의 생각이 처음으로 크게 달라지는 순간입니다.
그때 김민석 대표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대통령의 생각을 당에 전달하는 대표가 될까요?
아니면 당과 국민의 목소리를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대표가 될까요?
어쩌면 좋은 집권여당의 기준은 대통령에게 얼마나 충성했느냐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대통령이 잘못된 길로 가려 할 때 얼마나 제대로 말할 수 있었느냐.
김민석 대표가 말한 ‘창조적 수평관계’가 실제로 작동하는지는 바로 그 순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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