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적으로 중도인 필자가 보기에, 이번엔 국회의장이 사고를 쳤습니다.
조정식 국회의장이 개헌을 주제로 한 기자간담회에서 "현직 대통령 연임 개헌은 국민 선택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이 한마디가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놨습니다.
헌법 128조 2항을 다시 짚어보겠습니다.
대통령의 임기 연장이나 중임을 위한 개헌은, 그 개헌안을 제안할 당시의 대통령에게는 효력이 없다고 못박아 놨습니다.
독재 정권의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입니다.
그런데 6선 의원 출신에, 국회의장이라는 헌법기관의 수장이 이 조항을 흔드는 듯한 발언을 한 겁니다.
파장이 커지자, 청와대가 하루 만에 선을 그었습니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헌법 체계가 연임을 허용하지 않고, 국민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못박았습니다.
"헌법 128조 2항은 흔들리지 말아야 할 역사적 합의"라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홍익표 정무수석, 성기홍 홍보소통수석도 각각 라디오에 나와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이라고 같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대통령실 참모 세 명이 하루 사이 나란히 진화에 나선 겁니다.
그만큼 파장이 심각했다는 뜻이겠죠.

그런데 정작 발언의 당사자인 조정식 의장의 태도는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본의와 다르게 오해와 논란을 불러일으켜 유감"이라고 했습니다.
국회의장실에서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발언을 철회한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이게 정말 원론적인 발언이었을까요.
개헌을 주제로 한 자리에서, 하필 '현직 대통령 연임'을 콕 집어 언급한 게 과연 우연일까요.
6선이나 지낸 정치인이, 이 발언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몰랐다는 것도 쉽게 납득이 안 됩니다.
경향신문과 한국일보 등 여러 매체가 사설을 통해 이 부분을 짚었습니다.
헌법정신을 위태롭게 한 발언이었다면, 정식으로 사과하고 발언을 즉각 철회하는 게 맞다는 지적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유감"이라는 표현은 사과가 아닙니다.
"원론적 입장"이라는 말도 해명이 되지 못합니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이 논란을 두고 "대통령을 정치적 논쟁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했습니다.
일리 있는 말입니다.
가뜩이나 개헌 동력 자체가 약한 상황에서, 이번 발언으로 개헌 논의는 더 힘을 잃게 됐습니다.
개헌이라는 중요한 의제를, 국회의장 스스로 정치적 의심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셈입니다.
여당 소속 국회의장이 이런 발언을 했으니, 야당 입장에서는 "역시 개헌을 연임의 도구로 쓰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기 어려울 겁니다.

대통령 본인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연임 개헌은 불가능하다"고 명확히 선을 그어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여당 내부에서, 대통령이 그어놓은 선을 자꾸 흐리는 발언들이 나옵니다.
정청래 후보도 최근 이 논란에 "헌법 128조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짚은 적이 있는데, 정작 국회의장이 이런 기본적인 헌법 조항을 모르고 발언했을 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는 건 하나입니다.
몰랐던 게 아니라, 알면서도 굳이 그렇게 말했다는 겁니다.
정치인의 말은 무겁습니다.
특히 국회의장처럼 상징성이 큰 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번 논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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